늦게 피는 꽃에게
늦게 피는 꽃에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4.01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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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딸은 참 특이한 아이다. 뱃속에서 열 달 동안 나와 한 몸으로 있다가, 세상의 빛을 보던 날 “저요” 하고 손을 들면서 나온 아이다. 보통은 분만대에 올라가면 오 분 이내로 아기를 낳는 것이 정상인데, 둘째딸은 한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알고 보니 머리만 먼저 나와야 하는데 무슨 이유인지 한 쪽 손을 번쩍 들고 나온다는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특이한 사연을 안고 우여곡절 끝에 내게 다가온 둘째딸은 큰딸과는 반대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도서관을 가도, 큰딸은 내 옆에 앉아서 오랜 시간 책을 보는 아이였다. 하지만 둘째딸은 오 분도 안 되어서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디서 무얼 하나 궁금해서 찾아보면, 가을날엔 풀밭으로 뛰어나가 폴딱폴딱 뛰어다니며 메뚜기를 잡던 아이였다.

세월은 흘러 사춘기의 절정인 중2 때의 일이다.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아 학교에 갔다. 이유는 둘째딸이 수업시간에 너무 떠들어서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바윗덩이 같은 것이 나의 심장을 꽉 누르는 것 같았다.

“선생님, 저희 딸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피해를 보았다니, 제가 아이를 잘못 키웠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저도 지도할 테니, 행여 이 시간 이후로도 그런 행동을 하면 어떤 벌이든 강력하게 내려주세요.”하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선생님은 눈빛이 인자하게 보이는 분이었다. “어머니를 만나고 보니까 앞으로 걱정 안 해도 되겠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철없는 행동을 하지만 분명히 잘 성장해서 멋진 아이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라고 긍정적인 말을 해주는 것이었다. 자식을 잘못 키운 것 같은 죄송스러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순간 교차되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불쑥 올라와 목이 메는 걸 느꼈다.

이 년 전 둘째딸이 중2이던 때 담임선생님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선생님은 그동안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사실 너무 힘들어서 명퇴할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만나고 나서 다시 힘을 얻었어요.”라고 말을 할 때 선생님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것을 보았고, 나 또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날 둘째딸을 위해 책까지 두 권 사서는 선물이라고 하면서 건네주던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늘 긍정적인 말로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준 선생님 덕분에 둘째딸은 사춘기를 보내면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었고, 마음이 성장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둘째딸은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직접 밥을 해서 대접해주는 인정 많은 아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늘 친구가 많고, 문과 여학생들의 로망이라는 말도 듣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고 긍정적이면서 에너지가 넘치고 재미있게 지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리사가 되고 싶은 둘째딸이 앞으로 어떤 색깔로, 어떤 모양으로 살아갈지 모르지만 걱정보다는 기대가 앞선다. 눈을 뚫고 봄을 알리는 복수초, 가장 더운 여름에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 가을의 전령사 연보라 쑥부쟁이, 살을 에는 추위에도 당당히 꽃을 피우는 동백나무도 있지 않은가. 둘째딸이 꽃이라면 그 중에서도 동백꽃이 아닐까 싶다. 태어날 때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둘째딸에게 앞으로 펼쳐질 인생지도 굽이굽이에서, 힘들 때 편히 쉴 수 있는 마음의자와도 같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천애란 재능시낭송협회 울산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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