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콜리아 - 마음과 우주
멜랑콜리아 - 마음과 우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2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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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마음이란 게 그렇다. 우주와 닮았다. 둘 다 분명 존재하지만 끝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가 없다. 마음이나 우주나 시시각각 변한다는 점도 같다. 둘 다 생명체처럼 끊임없이 움직인다. 마음속에 생기는 근심이나 걱정은 우주 공간 속의 블랙홀과 비슷하다. 근심이나 걱정이 생기면 그것은 블랙홀처럼 모든 걸 빨아 당긴다. 사는 게 힘들어지면 삶은 무거워진다. 블랙홀은 중력이 어마어마하다.

'라스트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에서 방금 결혼식을 마치고 피로연장으로 향하는 저스틴(커스틴 던스트)의 마음속에도 지금 블랙홀이 생겨 모든 걸 빨아 당기고 있다. 그 블랙홀의 이름은 '불안' 혹은 '우울'이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신부가 왜 그러냐고 묻겠지만 결혼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걸. 당장 식장에서도 하객들을 향한 환한 웃음 뒤로 마음 한켠은 뭔가 모를 불안과 우울에 시달린다. 하나였다가 둘이라는 새로운 삶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우울할 수 있고,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도 생길 수밖에 없다. 저만치 사라져가는 자유에 대한 아쉬움은 덤이다. 그런 저스틴의 마음도 모른 채 이혼한 엄마(샤롯 램플링)는 피로연장에서 자신은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라면서 "딸을 말리고 싶다"는 독설을 날린다. 결국 저스틴은 신랑인 마이클(알렉산더 스카스가드)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뒤 결혼을 파토내 버린다.        

파혼 후 저스틴은 우울증 증세가 심해져 친언니인 클레어(샤롯 갱스부르)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그런데 클레어의 마음속에도 지금 블랙홀이 하나 생겼다. '멜랑콜리아'라는 이름이 붙여진 소행성이 지구로 돌진하고 있었기 때문. 언론이나 과학자들, 혹은 남편 존(키퍼 서덜랜드)도 지구를 비켜갈 거라지만 지구 종말에 대한 클레어의 불안과 우울은 갈수록 커져만 간다. 그런데 웬걸,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는 동생 저스틴은 소행성에는 의외로 무감각했다. 나체로 풀밭에 누워 소행성을 그윽히 바라보기까지 한다.  

결혼생활을 앞둔 신부의 불안과 우울을 소행성 접근에 따른 지구종말에 대한 불안과 우울로 녹여낸 <멜랑콜리아>는 인간의 삶을 우주에 갖다 붙인 역작이다. 사실 '결혼'과 '소행성 접근'은 비슷한 현상이다. 신부 입장에서는 자신을 사랑한다며 한 남자가 접근을 해왔고, 그가 청혼까지 해서 결국 둘이 되는 결혼식장까지 오게 됐다. 지구 입장에는 자신에게 접근해오는 소행성도 어쩌면 지구를 사랑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점점 가까워지게 된 지구와 소행성은 결혼식장에 함께 선 남녀처럼 근접을 이루게 된다.

이제부터가 중요한데 결혼이란 게 그렇다. 현상학적으로 그건 일종의 '충돌(衝突)'이다. 서로 다른 생각과 과거를 지닌 두 남녀가 만나 하나가 되는 게 결혼이다. 생각은 곧 '방향'이고, 과거는 '질량'이다. 소행성의 지구 접근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바로 소행성의 방향과 질량 아닌가. 그것에 따라 지구의 운명은 크게 달라진다. 소행성의 항로가 지구를 살짝 비켜가거나 지구와 충돌을 하더라도 소행성의 질량이 아주 작을 때는 지구 종말 같은 운명을 접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충돌을 피할 수 없는 방향에다 질량까지 엄청나다면 지구는 결국 종말을 맞게 될 터. 결혼을 하는 두 남녀의 생각이 크게 달라 의견대립이라는 충돌을 피하기 어렵고, 어느 한 쪽의 양보가 불가능할 정도로 서로 간의 질량이 어마어마할 때는 결국 파혼이나 이혼이라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제목인 '멜랑콜리아(melancolia)'는 '우울'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소행성 멜랑콜리아의 접근은 지구에 사는 우리 인간들이 맞이할 수 있는 최대치의 우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종말이니까. 또 실제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라스트 폰 트리에 감독은 의외로 지구 종말은 두려워하지 않는 동생 저스틴을 통해 우리 개개인이 떠안고 있는 내면의 우울이나 불안도 사실은 우주적인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있다. 아니 실제로 우리 내면의 우울과 불안은 우주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주의 90%이상이 어둠이라서 우울하고, 지구는 태양과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이 수 십 억년을 똑같은 궤도로 돌고 있다. 궤도가 조금만 틀어져 태양과 조금만 가까워져도 타서 죽고, 조금만 멀어져도 얼어서 죽는다고 하니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난 평소 열라 좋아하는 햄버거 세트면 '만고 땡(온갖 괴로움과 작별하다)'이니까. 훗! 2012년 5월17일 개봉. 러닝타임 136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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