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산책
인문학으로의 산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27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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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개월째 전국을 뒤덮고 있는 미세먼지 이상으로 온 국민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사건들이 연일 매스컴에 터지고 있다. 소위 ‘버닝썬’ 사건만 봐도 일반 국민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룻밤 술값만 기본이 수백만원에서 수억원씩 하고, 물뽕이니 마리화나 같은 마약류가 일상적으로 유통되고, 성폭행부터 성상납에 이르기까지 성범죄가 판을 치고, 조직폭력과 경찰유착, 그리고 권력형 비호까지 나올 수 있는 온갖 범죄 유형은 다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범죄 백화점’이다.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도 모자라 공분까지 느끼고 있다. 뼈 빠지게 일해야 1년에 수천만원 벌기가 힘들고, 그나마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헬 조선’을 울부짖고 있는 판국인데,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일부 젊은 연예인들은 한류 덕분인지 어린 나이에도 스스로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돈을 벌고, 이 돈을 이번 사건처럼 부정한 일에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쓰고, 부도덕한 행동을 거리낌 없이 일삼고, 이를 과시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단지 일부 철없는 젊은 연예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치인, 언론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성추문 사건과 각종 뇌물수수 및 청탁 사건,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갑질 횡포, 기업 오너들의 직원 폭행 및 폭언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사건들이 국민들을 미세먼지보다도 더 깊은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원인을 여러 가지로 추정할 수 있겠으나, 필자가 보는 견지에서는, 인간이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의 부재와 비정상적인 사회조류 때문이 아닐까 한다. 사회조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변하기 마련이어서 이 문제는 접어두기로 한다. 지금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을 갖추는 일이다. 이것이 인문학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요구 때문인지 최근 각종 방송에서는 요리 프로그램만큼이나 스타 강사들에 의한 인문학 강의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동양철학에 근거한 인문학에서 서양철학에 바탕을 둔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에 대한 정의와 접근방법도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공학자인 필자가 보기에 인문학이란 TV에서 보는 것처럼 전혀 현학적이지도 않고, 공학처럼 어렵거나 복잡한 것도 아니다. 인문학이란 그저 사람답게 보편타당하게 살아가되 하는 일에 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 혹은 사회운동을 의미한다고 본다.

약 100년 전의 프랑스 시인 ‘프랑시스 잠(1 868~1938)’의 그 유명한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라는 시가 인문학의 정의를 함축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인간적인 위대한 일들이란 ‘나무통에 우유 받는 일, 꼿꼿하게 살을 찌르는 밀 이삭을 따는 일, 암소들을 새잎 돋은 오리나무 옆에 머물도록 지키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아이들 곁에서 낡은 구두를 손질하는 일, 빵을 굽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텃밭에 양배추와 마늘 씨를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과 같이 매우 일상적이고 소소한 일들이다. 사람 사는 데 이 이상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잘못된 인성교육과 이로 인한 비뚤어진 인생목표, 목표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것이 유능해 보이는 비상식적인 사회풍조 등이 작금의 ‘말도 안 되는’ 사회적 병폐를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더 늦기 전에 어린 학생들뿐 아니라 기성세대들도 인간의 고귀함을 깨닫고 인격을 함양하는 인문학 운동을 새마을 운동하듯 했으면 한다. 소소한 일상에 만족하고, 주변과 함께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많이 가진 자는 주위와의 나눔에서 행복을 느끼며 사는 기술을 배웠으면 한다.

프랑시스 잠의 시와 유사한 우리나라의 대중가요가 있어서 나지막하게 음미해 본다.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 번 또 느껴보자/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벽의 작은 창가로 흘러드는 /산뜻한 노는 아이들 소리/ 아 나는 살겠소 태양만 비친다면/ 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 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밤과 낮 구별 없이/ 고개 들고서 오세/ 손에 손을 잡고서/ 청춘과 유혹의 뒷장 넘기며/ 광야는 넓어요/ 하늘은 또 푸르러요/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한대수가 부른 ‘행복의 나라로’의 노랫말이다. 음미할수록 왠지 더 공허해지는 뿌연 봄날의 아침이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 대표이사 공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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