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자갈 자갈어’ 타령
‘자갈자갈 자갈어’ 타령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24 1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해도 삼월 초순이 지나 봄비가 제법 후드득 소리치며 내리자 황어 떼가 기다렸다는 듯 태화강 낙안소까지 용케도 거슬러 올라왔다. 그들은 구영교 아래 백천 여울을 그냥 지나쳐 천상 큰 거랑 깊은 물에서 하룻밤을 머물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른 다음 어슴새벽을 틈타 자갈밭 넓은 점촌 여울을 본능적으로 골랐다. 따뜻한 햇살이 점촌 다리 아래로 찾아온 순간 붉은 색과 검은 색이 햇빛에 번갈아 반사되면서 물이 튀고 자갈 부딪치는 소리가 동시에 났다. 점촌교에서 내려다본 여울의 풍경이다.

그들은 현재 집단으로 산란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는 중이다. 자갈을 안고 혹은 등에 진 채자갈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온 힘을 다해 반복하고 있다. 붉은 색과 검은 색이 조화로운 황어의 몸뚱이 장식은 적과 흑이 선명해 무대의 조명처럼 환상적이다. 떼 지어 모여든 재갈매기, 붉은부리갈매기의 울음소리가 먹이잔치를 스스로 축하라도 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년 춘삼월 봄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고 우수가 태화강을 찾으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지난 14일 지역 조간신문들은 일제히 황어의 태화강 산란회귀 소식을 포토뉴스로 전했다.

황어가 천상 큰 거랑을 찾는 달이면 낙안소에서 놀던 기러기는 이미 북쪽으로 떠나고 없다. 해연 갈대밭 구멍에서 다소곳이 웅크리고 잠자던 털게는 양 집게 팔을 포클레인 시운전하듯 크게 벌렸다 오무렸다를 반복한다. 모진 추위를 이겨낸 두둑의 갓(辛菜)은 나날이 줄기가 굵어져 마치 중년의 누님 허리라도 보는 듯 정감 있게 다가온다.

장춘오에서 잠을 깬 봄처녀는 단숨에 무학산, 삼봉을 지나 무동(舞洞)에서 긴 수건춤을 한바탕 추고는 언양 미나리꽝을 미련 없이 뒤로한 채 삼동천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한다. 쌍수정에서 잠시 머물던 그녀는 이내 화천(花川=穿火川), 상천(象川)으로 치달으며 화천의 애쑥(艾)과 상천의 정수(淨水)를 마구 흔들어 깨운다. 놀란 이들은 두물머리 물이 되어 쌍수정(雙水亭)을 얼싸안으며 태화강을 찾아든다. 어디 그뿐인가. 대천, 구수, 대암, 미연, 반천, 늠내, 곡연, 삼봉, 사연, 사일, 삼형제바위, 망성, 백용담, 중촌, 천상, 구영, 백천, 낙안소… 이 골짝 저 골짝을 두루두루 살피며 눈웃음을 치기도 한다.

황어는 한 시절 울산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봄철 먹거리였다. 단백질 음식이 부족한 겨울 석 달이 지나자마자 만날 수 있는 황어 떼를 지역 사람들은 구들장고기, 자갈어, 쑥국어라고 불렀다. 그저 소 닭 쳐다보듯 무심하게 지나쳐버릴 일이 아니다. 그 이름 속에는 서민들의 한 시대 애환이 콩고물처럼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다.

“항애(황어)가 올라오면 방에 가만히 누워있을 수가 없지. 이놈들이 자갈밭에 알 붙인다고 자갈자갈 한다 아이가. 그러니 시끄러워서 편히 누워 잠을 청할 수가 있나. 한참 올라올 때는 거짓말 쪼매 보태서 구들장이 들썩들썩 하는 기라…”

“항애가 한참 올라올 때는 온 천지가 자갈자갈 하지. 자갈에다가 고놈들이 알을 붙이거든. 그 구경 참 좋고말고. 서로 얽히고설킨 모양이 갈등보다 더하다 아이가….”

“항애 한 마리를 놓고 난도질을 해대지. 쑥을 같이 넣고 끓이면 맛 하나 끝내주지, 한 사발씩 퍼 먹으면, 세상 부러울 기 어디 있나…”

울산 사람들은 구들장이 들썩거릴 정도로 요란하다고 ‘구들장고기’, 자갈밭에 산란을 하느라 자갈 속을 찾는다고 ‘자갈어’, 어린 쑥과 함께 끓여 먹는다고 ‘쑥국어’라고 불렀다.

황어는 오직 자손번식을 위해 태화강을 찾고, 수컷 여러 마리는 적극적인 동시혼례에 기꺼이 동참한다. 맑은 물이 흐르는 좋은 환경을 골라 꼬리에 피멍이 들도록 모래자갈 쳐내기를 반복하는 수고로움도 녀석들은 마다하지 않는다. 녀석들의 이러한 행동은 오직 낳은 알들이 떠내려가지 않고 신선한 산소를 공급받아 건강하게 부화하여 다음 세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목적이다.

황어는 태화강에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며칠이면 많은 알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다시 일상의 바다로 돌아간다. 황어가 떠난 뒤에는 강변의 사람들조차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 하는 듯 무심해진다. 매년 찾는 황어를 소재로 한 가사를 베틀가 장단에 입혀 봤다. 일명 ‘자갈자갈 자갈어’ 타령이다. 한번 불러보자. 굿거리 한 장단 쳐라.

“찾아를 왔네 올라를 왔∼네/ 잊지를 않고서 찾아를 왔∼네/ 화천 두둑에 봄쑥이∼요/ 백천 천상에 자갈어∼라/ *에헤요 베 짜는 아가씨/ 사랑 노래 베틀에 수심만 지누나.”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