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는 삶의 보약
걷기는 삶의 보약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2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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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걸을 때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뭔가 얻기 위하여 걷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초조해지거나 불안할 때 걷기를 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기분이 업(up) 될 때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 걷고 싶을 때가 많다. 한반도 땅 끝 마을 해남까지도 좋다. 시골의 아름다운 길을 따라 며칠이 걸리더라도 걸어가고 싶다. 홀연히 외국에라도 나가 걷고 싶지만 일단 국내에서부터 차근차근 걸어가고 싶다. 도별로 나누어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관계없이 언제라도 걸어보는 것이다.

걷다가 피곤하면 쉬었다 가면 되고, 걷다가 배가 고프면 요기를 청하면 된다. 걷다가 서산으로 해가 어둑어둑 지면 숙소에 들어가 돈을 주고 푹 자면 된다. 다음날 아침 상쾌하게 일어나 목욕하고 아침 먹고 또 걸어간다. 산이든 언덕이든 다 좋다. 시골 마을길이라면 더욱 좋고 멋진 도시가 나오면 그런대로 역동감을 느껴 좋다. 세상 사람들을 만나 한마디씩 말을 건네면서, 당신은 재미있냐고.. 당신은 어떻게 사냐고…. 그냥 산다고 대답하면 나도 그렇게 산다고 대답하련다. 내일은 어떻게 살 거냐고 물으면 오늘같이 살 거라고 대답하련다. 걸으면서 세상을 알려고 무단히 노력하고 싶다.

과연 우리의 ‘행복’이 삶에서 무언가.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 때문에 걷기를 하는 건가. 멋진 경치를 만끽하고 아름다운 글을 읽고, 조용한 음악을 듣는 것, 이 모두 행복을 위하여 하는 일이 아닌가.

약 400만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난 인간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는 좀 달랐다. 원숭이와 비슷하여 네 발로 기어 다녔고 조금씩 진화하여 두 발로 직립 보행했다. 우연히도 티베트어로 ‘인간’이라는 뜻은 ‘걷는 존재’라 한다. 그래서인지 인간이 걸어 다닌다는 사실은 아마도 숙명일지도 모른다.

서명을《병 90%는 걷기만 해도 낫는다》라 붙일 정도로, 서점 점두에는 건강 책자가 많이 진열되어 있다. 바야흐로 백세시대에 즈음하여 ‘걷기’에 대한 모두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쇄도하고 있다.

2016년 ‘터널’이라는 재난 영화가 있었다. 영화감독 겸 배우인 하정우의 히트작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그는 한강변이든 하와이 와이키키해변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니는 대단한 걷기광이다. 자그마치 30센티 크기의 발을 밟고 있는데 매일 3만보 이상을 걷는 건강인이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하루 20리를 달리지 않으면 좋은 글을 창작해낼 수 없는 달리기 마니아다. 이자카야 술집을 10년이나 바닥 체험한 그는 달리기 하나로 자기의 삶을 대역전시킨 보기 드문 건강인이다.

160여 년 전 미국의 자연주의 작가 소로우(H. Thoreau)는 그의 저서《Walking》(1851)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하루에 최소한 네 시간 동안, 대개는 그보다 더 오랫동안 일체의 물질적 근심걱정을 완전히 떨쳐버린 채, 숲으로 산으로 들로 한가로이 걷지 않으면 건강과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믿는다.

나는 단 하루라도 밖에 나가지 않은 채 방구석에만 처박혀 지내면 녹이 슬어버리고, (중략) 고해성사가 필요한 죄라도 지은 기분이 된다….’ 정말로 걷기의 철학을 통찰한 명석한 문학가임에 틀림없다.

‘걷기’는 어느 누구에게라도 구애되지 않고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강 유지 방식이다. 부지런히 걸었기에 내 인생이 바뀌는 것이지, 내 인생을 바꾸기 위하여 걷지를 않는다. 그러기에는 구차한 날씨 변화에 위축되어서도 안 된다. 걷고 난 후 목욕이란 또 최고로 상쾌함을 준다. 게다가 따뜻한 차 한 잔을 곁들이면 마음의 안정을 주고, 심리적 평화와 자유로움으로 빠르게 젖어들게 한다. 순간순간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솟구치기도 하니 이 얼마나 삶과 일에 도움이 되는 보약처방인가?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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