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스트와 칼럼니스트
저널리스트와 칼럼니스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19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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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아는 지인의 명함을 보면 ‘저널리스트 아무개’로 되어있다. 이 친구는 언론사에 적을 두지 않음에도 진정한 저널리스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잘못 표기한 명함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교환한다. 이 친구의 정확한 표현은 ‘칼럼니스트 아무개’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언론을 ‘저널리즘’이라 한다. ‘저널리스트(journalist)’는 언론인 자체를 말하고 주로 사실(팩트)에 근거한 내용인지라 자기주장은 소극적이다. 그러나 외부 기고자인 ‘칼럼니스트(columnist)’는 특정사안의 전문가나 경험자를 말하고 자기주장은 적극적이다. 만약 독자분이 인도 여행을 갔다 와서 기행문을 잘 정리하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여행전문잡지 또는 신문에 ‘아무개의 인도 탐방기’라고 게재한다면 여러분도 ‘여행 칼럼니스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사설(社說)은 신문사의 공식적인 견해를 정리하여 발표하는 것으로 주로 논설위원들이 작성하고 기고하는 글이다. 이는 논설이라고도 하며, 신문사나 출판사에서 국제적·국내적 시사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책임으로 표명하는 의견이나 주장이다. 사설의 주제는 시대의 공동관심사로 등장하는 지속적인 의미를 지니는 문제이다. 그리고 사설은 객관적으로 보아 신문사의 의견이지 집필자 개인의 견해는 아니다.

따라서 사설은 시대의 변화와 신문사의 성격에 따른 특징과 논조를 지니게 된다. 100여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신문도 사회사의 변천에 따라 사설의 자세가 제각기 달랐다. 현재의 사설은 그때그때의 정치·경제·사회문제에 대해서 독자의 입장에서 비평을 가함과 동시에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해설의 역할을 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즉, 사설을 집필하는 언론인들의 ‘전문화 추세’가 서서히 관철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또 사설의 취급범위도 무제한적으로 광범위해지고 있는 경향이다. 특정한 시사문제를 떠나서 생활·철학·윤리 등의 선택된 주제를 사설로 다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사설은 신문의 견해를 표명할 수 있는 개성을 지녀야 함과 동시에 독자의 건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하여야 한다.

칼럼(Column)은 신문사 논설위원이나 기타 사외전문가, 학자, 교수 등이 특정한 주제를 갖고 다양한 분야의 생각과 의견을 정리하여 기고하는 것이다. 이는 신문지상의 시사문제나 사회풍속 등을 촌평하는 난, 상시특약 기고기사, 매일 일정한 자리에 연재되는 단평란 등을 말한다.

사설이 사론(社論)을 대표하고 정치·경제·사회에 속하는 중요 사항을 거론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칼럼은 시정에서 일어난 일부터 자연이나 계절의 변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소재로 삼을 수가 있고, 한 사람의 필자가 주관적인 감상을 서술하는 경우가 많아 독자들에게 보다 친근감을 주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어느 회사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된 칼럼니스트가 활동하며, 독특한 취재원에 의한 정보나 설득력 있는 의견을 칼럼으로 정리하여 각 신문에 제공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이름을 써넣게 되어 있다. 미국에서 오늘날과 같은 칼럼이 시작된 것은 1880년 전후부터인데, 한국의 칼럼이 주로 신문의 권위에 의존하고 있는 데 반하여 미국의 칼럼은 집필자의 권위에 의해서 독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대조적이다.

정치평론·사회시평을 중점으로 하는 칼럼니스트가 활약하게 된 것은 신문이 외교와 내정문제 해설에 주력하기 시작한 1920년대 이후이다. 그러나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칼럼니스트의 전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니 아쉽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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