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천변, 세계 역사문화의 보고(寶庫)
대곡천변, 세계 역사문화의 보고(寶庫)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18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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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천변은 거대한 역사문화박물관이다. 수천 년 세월이 빚어낸 역사문화의 집합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3곳의 중생대 공룡발자국 화석은 지질시대의 유산이고, ‘반구대암각화’는 선사시대의 유적이다. ‘울주천전리각석’의 암각화와 명문은 선사유적과 신라 왕실 사람들과 화랑들의 기록들이다. 물에 잠긴 대곡호에서는 청동기시대부터 형성되었던 천여 기의 고분에서 수많은 유물들을 수습했다. 기와와 옹기, 자기, 숯 등 각종 가마터에다가 야철지와 제련로까지 발굴되면서 이곳이 고대인들의 제조업 현장이었음이 확인되었다.

대곡천의 역사문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은 사라진 백련사지, 장천사지, 반고사지 등의 폐사지는 융성했던 신라 불교문화의 흔적들이고, 백련정, 집청정, 모은정, 관서정은 대곡천의 풍광이 빼어났음을 일러주고 있다. 반구대에 세워졌던 반고서원은 반구서원, 반계서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면서 ‘포은, 회재 한강’의 학문을 기렸다. 그곳은 원효와 포은의 유허지이지만 겸재는 반구대를 진경산수화로 남겼다. ‘연로개수기’는 벼랑길을 드나들던 옛사람들의 기록이고, 바위글씨와 학을 그린 그림도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남긴 자국들이다.

이 대곡천은 탑골샘에서 발원하는 태화강 중상류의 일부이다. 미호저수지를 거쳐서 남류하다가 두동면으로 접어들면 대곡천이 시작되는데, 도와 최남복은 여기에 백련구곡을 경영했다. 지금은 대곡댐으로 인해 수몰되었지만 삼정리, 천전리를 차례대로 흘렀던 곳도 대곡천의 일부이다. 대곡천은 다시 연화천, 구량천, 반곡천이 합류되어 사연호에 머물렀다가 흘러서 가지산에서 출발하는 태화강 물줄기와 만나기까지의 지방하천이다. 조선시대의 대곡천은 경주부와 언양현, 울산군 등 3개 고을을 가로질러 흘렀지만 지금은 대곡천 유역 모두가 울산 땅이다.

내가 처음으로 대곡천을 찾은 때는 1974년 여름이었다. 그 이듬해는 네 번씩이나 찾았지만 이곳이 역사문화의 의미를 이렇듯 크게 담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몰랐다. 다만 1973년에 국보 147호로 지정된 ‘울주천전리각석’이 화랑유적지라는 정도로만 인식하고 길천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을 데리고 그 먼 곳까지 걸어서 소풍을 갔던 때가 1975년 가을이었다. 그 무렵의 사연댐은 여름이면 집청정 앞에까지 물이 들어차 있었는데, 중류 방면 호숫가 어디엔가 암각화가 물에 잠겨있다는 소문은 듣고 있었다.

대곡천은 1990년대부터 세계 역사문화의 보고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반구대암각화’가 그 중심인데, 발견된 지 24년 만인 1995년에서야 비로소 국보 285호로 지정되었다. 이 암각화는 사연댐으로 인해 훼손이 무척 우려되었으나 대곡댐 조성 이후 적잖게 해소되었다. 그래도 여름철이면 자주 물에 잠기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항구적 보존 대책은 여전히 난항이다. 공식 명칭인 ‘울주대곡리 반구대암각화’를 ‘울주대곡리암각화’로 바꾸기를 제안한다. 암각화가 반구대에서 1km나 하류 쪽에 있기도 하지만 ‘울주천전리각석’과의 균형 문제 때문이다.

암각화 이전의 대곡천에는 반구대가 으뜸이었다. 반구대는 반구산 끄트머리 바위인데, 대곡천 물굽이가 가장 큰 각도로 꺾이면서 흐르는 곳이다. 거북의 머리에 해당하는 이곳은 원효가 반고사를 지어서 저술에 몰입했던 곳이다. 또 포은이 언양으로 귀양을 와서 자주 찾은 인연으로 ‘포은대’라고도 불렀으며, 언양 유림들이 반고서원을 건립했던 곳이기도 하다. 반구대 건너편에 운암 최신기가 세운 집청정이 접빈의 장소로 이용되었는데, 이곳에서 260명의 시인이 400여 수의 한시를 남겼다. 반구대 암벽에도 학을 그린 그림과 많은 글씨들이 새겨져 있다.

대곡천은 2009년의 대곡박물관 개관과 함께 부활을 시작했다. 수몰지인 대곡천 상류 땅속에 잠자던 고대인들이 수많은 유물들과 함께 물 밖으로 걸어 나와 박물관으로 들어갔다. 수몰된 곳에서 수습한 1만3천여 유물들이 이 박물관에 전시된 것이다. 해마다 울산 서부권 역사문화를 재조명하는 특별전을 열면서 시민들 인식 변화에 불을 댕겼다. 2008년에 준공한 울산암각화박물관은 ‘반구대암각화’ 그림 숫자를 처음 보고서보다 116점이 더 많은 307점으로 보고했다. 2011년에 문을 연 울산박물관도 부활의 꽃을 피우는 데 힘을 실었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라있는 <울주 대곡리 암각화군>은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을 포함한다. 이들이 문화유산 본 목록에 등재되면 대곡천은 말 그대로 세계 역사문화의 보고가 된다. 그때는 사람들이 ‘반구대암각화’를 근거리에 접근하여 볼 수 있어야 한다. 공룡들이 지나가고, 산짐승들이 뛰어다니고, 옛사람들이 걷던 대곡천 그 길 따라 오늘날의 우리도, 앞으로 살아갈 미래인도 세계인들과 함께 걷게 해야 한다. 유장하게 흘러온 물줄기를 그냥 흘러가게 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정호 수필가·울산학포럼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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