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박상진’ 그 언저리
‘뮤지컬 박상진’ 그 언저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1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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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만세운동 100주년은 울산 사회에도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왔다. 그 선봉에는 창작뮤지컬 <마지막 여정, 박상진>도 어깨를 나란히 한 것으로 보인다. 3월 1일 오전, 울산문예회관 삼일절 경축행사에서 30분짜리 ‘맛배기’로 첫 선을 보인 이 작품은 울산문예회관(3월 9~10일 저녁), 북구문예회관(3월 15~16일)에서도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이 뮤지컬은 사실 공연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시민 100인’의 출연 소식이 전해진 덕분이다. 필자는 관람 기회를 1일 낮과 9일 저녁, 두 차례나 가질 수 있었다. 인상에 남는 것은 두 차례 모두 객석을 가득 메운 만석(滿席) 공연이란 사실이다. 특히 9~10일과 15일에는 송철호 울산시장이 ‘깜짝 출연’,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시민 100인’ 속에 그도 들어있었던 것.

사실상의 초연(初演) 날인 9일, 막이 내리기 직전 무대에 오른 ‘독립지사’ 역의 송 시장은 특유의 우렁찬 목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조국을 되찾기 위해 최초로 결성된 무장독립단체 대한광복회의 총사령 고헌 박상진. 그는 비록 광복의 그날을 보지 못하고 쓰러져 갔지만 상덕태상화와 대한광복회를 본보기로 하여 기미년 삼일만세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무장독립투쟁, 민족실력향상운동, 독립외교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의 발판이 되었고, 독립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행동만이 우리의 조국을 바꿀 수 있고, 실천만이 잠자는 민족을 깨울 수 있다.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동지여!”

이날 밤 관객들의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그 중에는 필자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넨 울산광역시 명예시민 실바노 라이몬디(79, 이탈리아 ‘몬타나리’사 파견 현대미포조선 수석감독)씨도 있었다. 그는 공연 직후 시장의 호명을 받고 객석에서 일어나 관객들에게 인사한 고헌의 증손 박중훈 씨와도 명함을 주고받아 눈길을 끌었다. 고헌의 생가(birthplace)를 그 다음주초에 찾은 것으로 보이는 그는 박 씨에게 생가 방문 사실을 영문편지로 알렸다. 편지에서 그는 “뮤지컬을 보고 한국의 역사를 좀 더 알게 됐으며, 한국 독립운동 이야기를 이탈리아 친구들에게 알려주겠다”고 했다.

15일의 북구문예회관 공연을 관람한 복수의 전문가는 <마지막 여정, 박상진>에 후한 점수를 주면서도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도록 ‘옥에 티’를 끄집어내 보여준 것이다. 간추리면 이렇다.

“첫째, VIP석과 내빈소개, 자막이 없는 3무(三無)가 인상적이었다. 다만 가사와 대사를 알 수 있게 자막만은 있었으면 좋겠다. 둘째, ‘안중근 이토 암살(1909), 판사 임용(1910), 신해혁명(1911)과 상덕태상회(1912)’와 ‘우편마차사건(1915), 김좌진과 노백린 입단(1915), 장승원사건(1917)’은 실제 발생순서와는 달랐다. 극의 전개상 불가피했겠지만 노백린은 1875년생으로 박상진(1884년생)보다 9세, 김좌진(1889년생)보다 14세 연상이다. 특히 백야(김좌진)와 고헌은 의형제인데 나이가 비슷한 평교(平交)처럼 보이는 대사처리는 좀 더 다듬었으면 좋겠다. 셋째, ‘제1회 사법시험’이나 ‘첫 판사’는 그냥 ‘사법시험’과 ‘판사’로 고쳤으면 좋겠다. 넷째, ‘대한광복회, 광복회, 대한광복단, 광복단’이란 명칭의 혼란이 있었다. ‘대한광복회, 광복회’는 그대로 둔다 해도 ‘대한광복단, 광복단’은 고쳐야 한다. 다섯째, 중국의 손문(孫文·쑨원)과 만나 ‘황포군관학교에 한인특설부 설치’를 부탁하는 장면은 그냥 ‘중국군관학교에 한인특설부를 설치하는 것’으로 고쳤으면 한다. 황포군관학교는 1924년 광저우에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옥에 티’는 또 있었다. 깜짝 출연의 주인공 송 시장의 제법 길어 보이는 대사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느낌으로 다가왔다는 얘기였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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