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고니 모정(母情) 사십구일
큰고니 모정(母情) 사십구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17 19: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큰고니 가족 여섯 식구가 태화강을 떠난 지 오늘로 한 달째(31일)가 된다. 쉬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세월보다 빠른 것이 있을까? 제트기가 아무리 음속으로 빠르게 날아도 다시 돌아올 것이기에 돌아오지 않는 세월에 견줄 수 있겠는가?

지난달 17일, ‘찌르레기 대숲’-찌르레기가 그 대숲만 잠자리로 이용하는 것을 보고 필자가 붙인 이름이다-앞 태화강에서 머리를 깃 속에 파묻고 고이 잠자는 큰고니 가족 모습을 어슴새벽에 만나고는 지금껏 만나지 못했다. 오늘 갓새벽에도 만나지 못했다. 항상 있을 것 같은 장소에서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란 아스라이 사라지는 귀촉도를 작은 키에 발돋움으로 봉송하는 심정이랄까! 불현듯 떠오르는 오래된 유행가에 잠시 눈을 감는다.

“물새야 왜 우느냐 유수 같은 세월을 원망 말어라/ 인생도 한번 가면 다시 못 오고 뜬세상 남을 거란 청산뿐이다/ 유수 같은 세월을 원망 말어라…”(손인호. ‘물새야 왜 우느냐’)

큰고니 가족은 태화강에서 잠을 자고 먹이를 먹고, 유영을 하며 49일 동안 서식하다 사라졌다. 해넘이에 찾아와 해맞이를 하고 소한, 대한, 입춘, 구정을 차례로 보내고 달집살이와 우수를 이틀 앞두고 후조(候鳥·철새)라는 이름 때문인지 어쩔 수 없이 떠났다.

불교 장례의식에 ‘49재’라는 말이 있다. 죽은 날부터 49일이 되는 날까지 상주와 병법사문(秉法沙門=염불하는 스님)이 함께하여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칠일마다 한 번씩 모두 일곱 번을 거행하다보니 49재라 한다. 공교롭게도 큰고니 가족이 태화강에서 49일간 머물렀기에 견강부회로 의미를 부여해 봤다.

49일 중 37일간은 큰고니 가족을 숙영지와 먹이터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12일간은 태화강 어느 곳에서도 관찰되지 않았다. 그러나 여명에는 늘 숙영지에 함께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49일 동안 주된 잠자리로 이용한 곳은 ‘찌르레기 대숲’ 앞 수면이었다. 25일간 잠자는 모습이 관찰된 곳이다. 태화강에서 활동하는 장소는 하류의 오산대교에서부터 상류의 범서대교까지였다. 해연과 낙안소가 주된 먹이터였다.

천상의 새 고니가 해넘이에 태화강을 찾았을 때부터 사진작가들은 그들의 다양한 포즈를 모델로 삼아 사십구일간 한(恨)도 원(怨)도 없이 생태작품을 찍었다. 조류학자의 바람은 그들과는 다르게 숙영지, 먹이터, 활동반경, 행동태 등 자료의 축적이었다. 자료 축적 과정에 작가들이 접근하는 것은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아빠고니가 관찰되지 않고 한 자식은 몸이 왜소한데다 행동마저 부자연스러운 점을 발견한 후부터는 작가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예민해졌다. 사진작가는 고니 가족이 수면을 박차고 힘차게 나는 모습을 찍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매일 찾아온 한 작가가 나에게 물었다. “한 마리가 행동이 이상하네요!” 그와 눈을 똑바로 맞추면서 정확한 발음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오랜 날을 태화강을 떠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고니는 부부 혹은 부부와 자식 등 가족단위로 활동한다. 태화강을 찾은 큰고니 가족은 성조(어미새)가 한 마리, 유조(어린 새)가 다섯 마리였다. 육안으로도 관찰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도 아빠고니는 보이지 않았다.

고니 가족은 주로 낙동강 하구를 중심으로 샛강에서 월동한다. 때로는 가족단위로 태화강을 찾기도 한다. 이번에 찾아온 큰고니 떼는 태화강에서 최장기간 월동한 가족이었다. 그 이유를 살펴봤다. 먼저 아빠고니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자식고니들은 유조로 올해 부화한 한 배 가족으로 추정된다. 어쩌다 아빠고니를 잃고, 어미고니가 중심이 되어 새 월동지를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상적인 가족이라면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가족의 안전을 지키고 보호하는 책임은 아빠고니가 진다. 아빠가 없는 가족들이 태화강을 찾은 것은 을숙도 월동에 여러 가지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었다고 본다. 그 다음은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자식의 존재를 들 수 있다. 한 배 형제이지만 왠지 몸집이 왜소하고 나는 데 장애가 심한 한 마리는 사십구일 내내 필자의 눈에 밟혔다. 먹이터로 이동할 때는 낮게, 뒤처지며 날곤 했다.

결론적으로, 어미고니는 사십구일 동안 허약한 자식을 위해 태화강을 떠나지 않았다. 보통 1월 말이면 월동 터를 떠나는 고니가 보름동안 더 머문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아픈 자식의 치료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고향을 찾아 떠나던 날, 고니가족 여섯 식구는 같은 높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날아갔다. 고니의 모정(母情)이 가져다준,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