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하 - 믿음과 진실
사바하 - 믿음과 진실
  • 이상길 기자
  • 승인 2019.03.14 2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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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바하' 한 장면.
영화 '사바하' 한 장면.

세상엔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가끔 괴물로 변하는 단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꿈'과 '믿음'이란 단어가 그렇다. 단어도 선과 악이 있다. 누구에게 물어봐도 이들 두 단어는 선한 쪽이라 말할 거다.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꿈을 꾸고 믿음을 갖는다는 것, 생각만 해도 아름답다.

하지만 이들이 괴물로 변하는 모습을 우리는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괴물의 특징은 잡아먹는다는 것. 꿈과 믿음도 가끔 사람을 잡아먹는다. '꿈은 이뤄진다'는 전혀 보편적이지 못한 속설에 끌려 다니다 보면 어느새 망가진 삶과 마주하곤 한다. 그 꿈이 야망에 가까울 땐 더하다. '성공', '1등', '출세', '부자' 같은 것들. 포기도 용기가 필요한 법,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꿈이 어느덧 괴물이 되어버린 지도 모른 체 죽을 때까지 쫓아다닌다.

믿음이 괴물이 되는 건 꽤 철학적이다. 사실 믿음의 반대말은 진실이기도 하다. 진실이란 게 의심에서 비롯되기 때문. 수많은 철학자들이 진실(진리)을 찾기 위해 의심을 했다. 데카르트에 이르러서는 끊임없이 의심하는 '방법적 회의'라는 개념까지 등장했다. 결국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의심을 해야 한다. 믿음을 갖게 되면 진실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믿음이 틀릴 가능성이 높은 건 우주만물의 원리와 대치되기 때문이다. 우주만물은 끊임없이 변한다. 지금 이 순간도 변하고 있다. 하지만 믿음은 고정적이다. 믿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그대로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나는 그 사람이 선하다고 믿어", 혹은 "그 분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냐"라는 등등의 믿음은 대상을 고정시키고 만다. 하지만 정작 대상은 지금 이 순간도 변하고 있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가끔은 선과 악 사이도 오간다.

개인 간의 관계에서야 믿음을 갖는다고 큰일이 날 경우는 사실 별로 없다. 하지만 믿음의 규모가 커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규모가 커진 믿음은 보통 '종교'와 '정치'로 성장한다. 물론 우리 삶에서 종교도, 정치도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믿음직한 종교와 정치가 아니라 소위 '사이비'일 때 믿음은 괴물로 전락한다. 그들이 권력을 가졌을 때는 더 크고 무서운 괴물이 된다. 그 때 믿음은 견고한 콘크리트가 돼 진실을 가둬버린다. 믿음에 막혀 그 어떤 진실도 먹혀들지 않는다. 어감상으로는 친할 것 같은 '믿음'과 '진실'은 그렇게 원수지간이 된다. 10여 년 전 황우석 사건 때를 떠올려보라. 아니, 뭐 굳이 그리 안 해도 요즘도.

이쯤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하자면 <사바하>는 믿음에 갇혀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보지 못 한다기 보다는 아예 보지 않으려 한다는 게 더 맞겠다. 그들의 믿음이란 게 엄연한 살인행각까지도 스스로는 선한 행위로 치장하고 있었으니. 이건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중세 십자군 전쟁 등 종교로 일어난 수많은 전쟁을 떠올리면 현실에 더 가깝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인 박 목사(이정재)가 동료인 고요셉(이다윗)에게 들려 준 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사이비 종교를 찾아 진실을 파헤치는 일을 하고 있는 박 목사는 지금 연쇄살인사건에 연루된 불교의 한 종파를 수사 중이다. 그는 요섭에게 차를 타고 가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마을에서 부모·형제를 모두 죽인 아이가 '왜 그랬냐'는 질문에 뭐랬는지 알아? '신(神)의 뜻'이라고 했데." 그리고 잠시 후 참혹한 사건 현장을 뒤로한 채 그는 눈 내리는 하늘을 쳐다보며 이런 탄식도 내뱉는다. "우리가 이렇게 고통 받고 있는데 그분(神)은 도대체 어디서 뭘하고 계신지." 중세 마녀사냥이나 십자군 전쟁 때도 가만히 계셨는데 설마.

<사바하>에는 정통 기독교와 불교를 비롯해 사이비까지 다양한 종교가 등장한다. 그렇게 영화는 특정 종교를 두둔하거나 비하하는 게 아니라 사이비 종교를 통해 오늘 날의 종교를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는 '믿음'이란 가치에 대해 우회적으로 꼬집고 있다. 정통이든 사이비든 종교는 사람을 지배하기 마련. 지배한다는 점에서 종교는 또 권력과 맞닿아 있다. 예술가는 늘 거짓으로 진실을 말하려 든다. 그래서 <사바하>에서 사이비 종교가 사람을 지배하는 모습은 궁극적으로는 정치권력까지 겨냥하고 있다. 종교나 정치나 믿음을 무기로 사람을 지배하니. 또 그 믿음은 한 번 생기면 잘 안 바뀐다. 심지어 진실을 보여줘도. 그래서 이집트 학자인 G. Massey같은 사람은 세상을 향해 이런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권력이 진실이 아니다. 진실이 권력이다."  2019년 2월20일 개봉. 러닝타임 1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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