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제의 자연산책] 빙옥처사를 찾아서
[조상제의 자연산책] 빙옥처사를 찾아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14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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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자장매.
통도사 자장매.

꽃 기행을 떠났다. 2월이 제주의 수선화라면 3월은 빙옥처사 매화다. 꽃길 따라 물길 따라 열리는 광양매화축제, 철길 따라 펼쳐지는 원동매화축제 등 벌써 언론에선 떠들썩하다.

3월 1일 아내와 함께 통도사로 향했다. 통도사 입구는 맑은 벗 청우(淸友)를 만나려는 화우(花友)들을 태운 차량으로 북새통이다. 한 시간 여의 기다림 끝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구름다리를 건너니 능수매화가 진한 향기로 우리를 반긴다. 가까이에서 꽃을 보고 향기를 맡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능수매를 뒤로 하고 일주문을 들어서니 오른쪽 한편에 홍매, 백매가 형제처럼 나란히 서서 꽃을 활짝 피웠다. 파란하늘을 등지고 서 있는 화사한 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 샷을 누르고 벌들은 더 깊숙이 꽃 속의 꿀을 찾아 숨어든다. 사진을 찍느라 홍매, 백매를 오고 가니 서로 다른 향기가 교차한다.

경내를 한 발짝 더 들어서니 그 이름도 유명한 사랑과 자비를 간직한 자장매(慈藏梅)가 연분홍 꽃단장을 하고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자장매화는 370년 된 노거수(老巨樹)로 영축산에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전령사(傳令使)다. 임진왜란 후 통도사 중창을 발원한 구름의 벗 우운대사(友雲大師)는 먼저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축조하시고(1643년), 이후 참회하는 마음으로 역대 고승의 초상을 모시는 영각(影閣)을 건립하였다. 영각 상량보를 올리고 낙성을 마치니 홀연히 영각 앞에 매화 싹이 자라나 해마다 섣달에 연분홍 꽃을 피우니 사람들은 이를 통도사를 세운 자장의 이심전심이라 믿어 그 매화를 자장매라 하였다.

정초에 자장매화 아래에서 소원을 빌면 한 해 동안 좋은 일이 꽃길처럼 열리고, 선남선녀가 사랑을 약속하면 백년해로 한다는 말이 전한다. 그래서인지 영각 앞에는 한해 소원을 비는 화우(花友)와 선남선녀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통도사 매화기행을 가서 오향매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오향매는 자장매 코앞에 홍도화와 나란히 있다. 자장매는 한창이지만 오향매는 아직 이르다. 3월 중순에 또 다시 발걸음을 해야겠다. 이 오향매는 추운 겨울을 이겨낸 그윽한 매화향이 성불을 향한 수행자의 향기 즉 ① 수행자가 계율(戒律)을 잘 지키는 향기(戒香), ② 수행자가 마음을 쉬게 하는 향기(定香) ③ 수행자의 마음에 걸림이 없는 향기(蕙香:혜향) ④ 마음을 뛰어 넘는 향기(解脫香) ⑤ 수행자의 마음에 나와 남의 구별이 없는 향기(解脫知見) 등 다섯 향기를 닮았다 하여 오향매라 부른다. 지리산 남녘 깊은 골짜기에서 자생한 이 나무는 수령이 300년 된 것으로 주지스님으로부터 그 이름을 얻었다.

이렇듯 매화는 나이를 먹고 명성을 얻으면 그 고유 이름도 함께 얻는다. 우리나라에는 나이 좀 드시고 명성이 높은 매화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산청삼매(山淸三梅)를 보자. 먼저 산청삼매의 맏형뻘인 남사마을의 원정매(원정매)다. 원정매는 수령이 650여년으로 고려말의 문신 원정공(元正公) 하집(河楫)(1303~1380) 선생이 심어 원정매라 부른다. 미술사학자 김용준은 그의 수필에서 “매화는 늙어야 합니다. 그 늙은 덩걸이 용의 몸뚱어리처럼 뒤틀려 올라간 곳에 성긴 가지가 군데군데 뻗고 그 가지에 띄엄띄엄 몇 개씩 꽃이 피는데 품위가 있다고 합니다.”라는 표현에 딱 맞는 매화다.

다음은 단속사지의 정당매(政堂梅)다. 정당매는 수령이 640여년으로 양화소록을 쓴 강희안의 선조 강회백이 어린시절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은 것으로 뒤에 강회백이 급제하여 벼슬이 정당문학에 이르자 그 매화를 정당매라 불렀다. 지금은 둥지는 썩고 밑동에서 새로운 가지가 나와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산청삼매 중 막내는 남명매(南冥梅)다. 남명매는 남명 조식선생이 산청군 시천면에 그의 나이 61세인 1561년 산천재를 짓고 후학들을 양성하면서 심은 매화로 수령은 450년이다. 남명매는 백겹매로 꽃이 마치 남명 조식선생의 기품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의 삶처럼 향기도 진하다. 이 밖에도 선암사의 선암매, 화엄사 흑매 등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매화는 많다.

울산에도 산청삼매처럼 명성이 높은 매화나무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북송시인 임포(林逋:967~1028)는 평생 벼슬과 결혼을 하지 않고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아(梅妻鶴子) 매화를 가꾸고 학을 기르면서 산수를 노래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제라도 텃밭에 매화나무를 심어야겠다.

<조상제 범서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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