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면서 문득
뉴스를 보면서 문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11 22: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월,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새 학기가 시작되는 즈음이다. 몇 번의 입학과 졸업을 통해 우리는 학벌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얻는다.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좋은 학벌이고, 아이를 비롯한 모두의 인생에서 절대로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어느 입시 전문가의 말은 우리가 얼마나 학벌에, 세칭 알아주는 학벌에 찌들어 사는지를 보여준다.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스카이 캐슬’ 속 사건들은 가상이 아닐지도 모른다.

유치원 입학은 이후 십 수 년 이어지는 학교생활의 시작일 터. 학부모와 아이들 모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즈음까지 시끄럽던 사립 유치원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았다는 뉴스를 보면서 문득 예전의 일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1학년 수학 시간. 선생이 몇 개의 번호를 불렀다. 아마 그날의 날짜로 끝나는 번호순이었거나 앉은 순서의 횡이거나 열이었을 것이다. 내가 받은 문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난이도 중 정도의 문제였다. 나는 분필을 잡고 풀이를 적어 내려갔다. 중간에 약간 막히기는 했지만 수월하게 답을 적었다. 우리가 문제를 푸는 동안 선생은 교실을 맴돌 듯 걸어 다녔다. 호리호리한 몸집, 날렵한 콧날과 처진 눈꼬리, 얇은 입술과 창백한 낯빛의 선생은 왠지 수학이라는 과목과 어울렸다. 엄격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녹록하지도 않은 선생의 태도는 학생과 열 걸음 이상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으로 문제를 푼 아이가 들어가자 선생은 칠판을 향했다. 풀이 과정을 눈으로 점검하던 선생은 내가 적은 답 위로 커다랗게 X자를 그렸다. 자리에 앉은 내 얼굴은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 그 뒤로 두어 개의 X자가 더 칠판에 떠올랐다. 선생은 답이 틀린 아이들을 다시 앞으로 불렀다. 나는 일어나 걸음을 뗐다.

선생이 갖고 다니던 막대를 잡고 허공에서 한 바퀴 돌렸다. 우리는 칠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내 눈에 분필 가루가 소복한 칠판 아랫부분이 보였다. 자, 선생의 한 마디에 우리는 실내화 한쪽을 벗은 후 선생 쪽으로 발바닥을 내밀었다. 선생은 몇 차례 발바닥을 내리쳤다. 실내화를 다시 꿰고 자리로 돌아오는 그 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사실 선생이 때리는 발바닥은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다. 다만 많은 이에게 등을 보인 채 서서 발바닥을 맞는 행위는 뭔가 모욕을 당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선생은 문제 풀이를 계속했다. 내가 푼 문제를 살피던 선생의 백묵이 순간 멈췄다. 풀이 과정을 따라가던 선생의 눈길이 빠르게 움직였다. 곧 이어 선생은 내 답이 맞다고 했다. 이 문제를 푼 학생이 누구냐는 선생의 질문과 함께 아이들의 눈길이 내게 꽂혔다. 잠깐의 정적이 교실을 삼켰지만 그뿐이었다. 수업이 계속되었고 나는 발바닥을 내리치던 선생의 손길과 막대가 닿던 발바닥의 아릿한 아픔을 잊을 수 없었다. 이후 수학 선생은 나를 따로 불러 문제집을 내밀기도 했고, 때로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선생이 내민 손길을 선뜻 잡을 수 없었다. 그러기엔 내가 그동안 겪은 선생들의 가식과 두 얼굴이 너무 많았던 탓이었다. 초등학교 선생들은 차별과 구별을 모르는 이들이었으며, 중학교 선생들은 자신의 욕망에 눈이 먼 자들이었으며, 고등학교 교사들은 일상에 치이고 재단에 밟히는 그런 나약한 존재들처럼 보였다. 대학교수들은 또 어떻던가? 개인의 욕망에 사로잡혀 자리와 명예와 권세에 찌든 집단들이 아니던가. 지금까지도 그날의 수업 시간은 씻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나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하면 작금의 유치원 사태는 남의 일 같지 않다.

얼마 전에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읽었다. 강의의 중심인 라틴어를 배우는 것 외에 여느 인문학 강의를 듣는 양 여러 이야기가 섞여 있었다. 라틴어는 유럽 인도어의 어원이다. 언어 체계의 갈래가 복잡한, 배우기도 가르치기도 어려운 말이다. 한동일 역시 라틴어처럼 촘촘하고 복잡한 문장을 쓴다. 책의 끝부분인 학생이 선생에게 보내는 편지는 흡사 용비어천가를 닮은 듯 한결같았다. 선생과 제자의 자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고, 강의를 듣고 반성하고 다짐하는 글투성이였다. 내게는 사족처럼, 왠지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져 씁쓸하기도 했다. 선생에게 강의를 듣고 반성하고 다짐하던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한바탕 입시를 치르고 나면 어김없이 졸업과 입학이 온다. 물론 좋은 선생 한 명이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봄, 새 학기를 시작하는 모든 학생의 안온한 출발을 기원한다. 물론 선생들에게도.

<박기눙 소설가>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