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계획법’이 필요한 중소기업
‘실험계획법’이 필요한 중소기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11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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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에 근무하는 한 연구원과 연구개발(R&D)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동안 방청제를 수입해 사용하는 것을 국산화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R&D 의뢰가 들어온 것이다. 이 회사는 신제품 개발 여부가 향후 ‘회사가 더 발전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고객의 요구조건에 따라 네 가지 물성을 맞춰야 하는데 시행착오에 의한 실험으로는 네 가지 물성을 동시에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운이 아주 좋으면 한 번의 실험으로도 찾을 수 있지만 많은 실험을 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회사의 운명이 걸린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휴일도 반납하며 연구에 몰두했다. 연구내용은 여러 가지 원료를 섞어서 점도, 비중 등 네 가지 물성을 맞추는 최적의 배합비율을 찾는 것이다. 1년여에 걸쳐 약 2천 번 실험을 반복한 끝에 배합비율의 최적조건을 찾았다. 이때 중소기업 연구원들은 너무 감격하여 같이 엉엉 울었다.

현재까지 최대한 실험횟수를 줄이고 개발에 성공하는 방법으로는 실험계획법이 유일하다. ‘실험계획법’은 영국의 수학자 피셔가 농업 실험에 처음 적용하여 생산량을 증대시키는 최적조건을 찾는 데 사용했다. 그 후 실험계획법은 계속 진화하여 오늘날에는 공학, 생물학, 약학 등 모든 산업 분야에서 전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범용적인 기법이다. 과거엔 실험계획을 세울 때 특히 고려되는 하나의 인자만을 변화시키고, 실측치에 영향을 미치는 그 밖의 많은 요소를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고찰해야 할 인자의 효과를 측정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와 같은 실험계획이 가능한 것은 극히 국한된 문제뿐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 바로 실험계획법이다.

초기엔 실험계획법을 풀 때 필산으로 계산하여 많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실제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20회 정도 실험을 해도 20~30시간 걸리는 것은 보통이기 때문에 실제로 산업에 적용하기가 곤란했다. 그러나 컴퓨터가 등장하고 통계 프로그램이 개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실험계획법에 대한 기초가 없는 사람이라도 4가지 실험계획법의 통계 프로그램을 배우면 실험횟수를 줄여 획기적으로 비용과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통계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5분 이내에 최적조건을 쉽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골치 아픈 환경공해 문제를 손쉽게 개선한 사례가 생각난다. 최근 울산 공기가 많이 깨끗해졌다. 쉴 새 없이 연기가 나오는 공장 굴뚝에 측정장치를 부착하여 실시간으로 울산시에 정보가 들어감으로써 실시간 관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 중 환경규제 물질은 질소산화물과 분진 두 가지다. 환경법이 강화되어 분진 함량은 50ppm 이하로 배출해야 한다. 보일러실의 당면 과제는 연기 중의 분진 함량을 50ppm 이하로 낮추는 것이다. 하지만 분진을 줄이려고 공기를 많이 주입하면 분진은 줄지만 질소산화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해결할 수가 없다.

분진과 질소산화물을 환경 규제치 이하로 나오게 하지 못하면 많은 비용을 들여 분진제거 장치를 설치해야 하고 유지비도 많이 들어간다. 굴뚝 연기에서 나오는 분진과 질소산화물의 양에 영향을 주는 인자로는 연료 중 질소 함량, 보일러에 주입하는 공기 양, 그리고 포화 스팀 양 등 세 가지다. 이 세 가지 인자를 적절히 조절하여 분진과 질소산화물의 양을 관리 범위 안에서 맞춰야 한다. 필자는 실험계획법의 한 기법인 반응표면법을 이용하여 17회의 실험 만에 분진과 질소산화물의 양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작업조건을 쉽게 찾아내어 해결했다.

이처럼 신제품이나 공정을 개발할 때 요구물성이 단 한 개일 때는 시행착오에 의한 실험으로도 쉽게 찾을 수 있으나 요구물성이 두 개 이상이 되면 시행착오 실험으로는 쉽게 찾을 수 없다. 동 금속합금, 윤활유, 방청제, 접착제, 화학공정 최적조건, 기계공정 최적조건, 보일러 운전조건, 폐수 처리조건 등 대다수의 R&D에서 요구하는 물성은 두 개 이상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연구인력이나 실험장비가 많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실험계획법 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태용 NCN 위원, 울산과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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