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도우미 그리고 옥천
버스도우미 그리고 옥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1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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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거의 유일한 통학수단이던 청소년 시절, ‘콩나물버스’니 ‘개문발차(開門發車)’니 ‘버스차장’이니 하는 말은 흔히 접하던 생활용어였다. 1960년대만 해도 전대를 허리춤에 두른 ‘차장아가씨’는 대체로 ‘친절’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었고, 그 이미지는 초인적 완력과 허스키한 목소리로 무장한 여전사(女戰士)로 각인되기 십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래야만 잔뜩 돈독이 오른 버스회사 사주의 비위를 맞춰줄 수 있었을 터이니까…. ‘비위를 맞춘다’는 것은 발차 순간 운전기사가 핸들을 기술적으로 꺾어서 버스 내부를 심하게 요동치게 한 다음(=승객들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은 다음) 버스 전체를 ‘콩나물시루’로 만드는 작업이었고, 이 작전에 반기(反旗)라도 드는 기사나 안내양은 유·무형의 보복을 각오해야만 했었다.

그러나 강산이 네댓 번은 더 바뀐 탓일까, ‘버스안내양’의 이미지는 180도로 달려져 우리 곁으로 다가와 있다. 미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 즈음이면 제법 그럴싸한 포장으로 매스컴을 오르내리는 것이 버스안내양의 부활 얘기다. 그중에서도 충북 옥천군의 그것을 단연 으뜸으로 친다.

흥미로운 변화 소식도 들린다. ‘버스차장’이란 말이 땅속으로 숨어버리고 ‘버스(승하차)도우미’란 말이 새로 선보인 것이다. 지난 3월 5일자 옥천 발 연합뉴스는 <”탕탕! 오라이∼”…옥천 시내버스에 승하차 도우미 떴다>란 제하의 기사를 띄웠다. 2013년부터 버스도우미 시책을 시행 중인 옥천군이 지난 5일 옥천읍과 청산면 장터를 오가는 시내버스 15개 노선에 도우미 16명을 배치했다는 소식이었다. 옛날과 달라진 게 있다면 버스도우미 모두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여성들이라는 점.

이들의 근무기간은 겨울을 뺀 3월부터 11월까지, 근무시간은 오일장이 서는 날 오전 6시∼오후 2시다. 하루 8시간 일하고 받는 돈은 7만1천원. 보잘것없어 보여도 만족도 하나는 어느 누구 부럽지 않다. 주로 시골 어르신들을 도와 안전사고를 막고 용돈도 버는 일거양득의 즐거움을 누리기 때문이라고. 옥천군 관계자는 노인복지 실현, ‘아줌마’ 일자리 마련, 인정 넘치는 사회분위기 조성도 무시 못 할 보람거리들이라고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렇다고 버스도우미 제도가 옥천군의 전유물은 아니다. 그 효시(嚆矢)는 옥천군보다 7년 먼저(2006년부터) ‘버스안내원 사업’을 시작한 충남 태안군이다. 이제 이 제도는 노령화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져 가는 농어촌 지역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충북 영동, 경북 의성, 경남 하동에서도 그렇고 최근에는 세종시 같은 도시에까지 번지는 추세다. 어느 영상매체는 태안군과 세종시 장날의 ‘버스안내원’ 소식을 전한 지난 2월 7일자 리포트에서 끝부분을 이런 멘트로 맺었다.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기는 안내원 버스는 자동화기계가 할 수 없는 정을 선물하며 오늘도 달리고 있습니다.”

‘향수(鄕愁)’의 정지용 시인과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기도 한 충북 옥천군(沃川郡)은 인구 5만을 턱걸이하는 작은 고장. 하지만 화젯거리 하나만은 풍성해 보인다. 어느 시점 흑자경영으로 돌아섰다 해서 전국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옥천신문’이 대표적이지 싶다. (이 신문은 1989년에 222명의 주민들이 군민주·郡民株 형태로 사주·社主 없이 창간한 지역신문이다.) 또 ‘풀뿌리 언론운동의 성공사례’라는 ‘옥천언론문화제’, 특정신문 불매운동을 겨냥해 만든 ‘조반마(=OO일보반대마라톤)라는 마라톤대회도 그 대상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대회는 OO일보 춘천마라톤대회 즉 ’조춘마‘의 반작용으로 생겨났고, 언론운동시민단체인 민언련과 옥천신문 등이 후원해 왔다.)

한때 인구가 12만2천까지 헤아렸다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충북의 작은 고장 옥천군. 언제 한 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에 잠을 설칠 때가 더러 있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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