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원 칼럼]청와대 국민청원 제도, 제대로 기능하는가?
[문병원 칼럼]청와대 국민청원 제도, 제대로 기능하는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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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직접소통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철학을 지향합니다. 국정현안 관련, 국민 다수의 목소리가 모여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는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각 부처 장관, 대통령 수석비서관, 특별보좌관 등)가 답하겠습니다.”

이는 청와대 국민 청원 및 제안 페이지에 나와 있는 글이다.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건의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이 되던 2017년 8월 17일에 공식 출범한 청와대 국민청원은 백악관의 시민청원 사이트 ‘We the People’을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 운영되던 국민신문고와는 달리 질문 내용에 제한을 두지 않는데다 빠른 피드백이 가능해 국민의 엄청난 성원을 받으며 시작되었다.

‘열린 소통’을 강조하던 문재인 정부의 지향목표와 일치하고 국민이 전목적인 응원까지 보내고 있으니 대중에게 이만큼 어필하는 제도가 또 어디 있겠는가. 국민이 검열 없이 직접 질문하고 정부가 직접 대답해 준다는 점에서 청와대 이미지 개선에 크게 기여했고, 이후 몇 차례의 기사화와 대중적 여론몰이에 성공하면서 국민들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게 되었다.

첫 번째 청원이었던 청소년법 관련 청원은 전에 없는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조 국 당시 민정수석의 발표는 가결 여부를 떠나 많은 화제를 몰고 왔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청원 후속조치가 발표되었고, 지난 2월 하순까지만 해도 청원목록은 41만 건을 넘어설 정도였다. 국민 참여가 이토록 적극적이었던 적이 역대 청와대 역사상 단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확실히 지금의 청와대는 여론을 긍정적으로 몰아가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최근의 청원목록 게시판을 보면 몇 가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 제도가 출발한 지 약 1년 반 사이 41만 건이나 되는 청원이 올라왔다면 줄잡아 하루에 800건에 가까운 청원이 올라왔다는 계산이 나온다. 과연 하루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글을 올린 것이 사실일까? 그리고 이 청원들은 정말 국민청원의 운영 취지에 맞는 것들일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자. 평창 동계올림픽 때 논란이 되었던 김보름 선수에 대한 국가대표 자격 박탈 요구, 이승훈 선수에 대한 금메달 박탈 청원, 박지훈 번역가에 대한 퇴출 요구, 국가대표축구팀 감독의 경질에 대한 청원뿐만이 아니다. 심지어 월드컵에서 페널티킥의 빌미를 제공한 장현수 선수를 사형시키라는 청원에다 전쟁을 하자거나 친구를 죽여 달라는 청원까지 올라왔으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과연 이런 것들을 청원이라 할 수가 있는가? 그저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이에 동조하는 댓글 부대가 많았던 것도 문제지만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사안들이 올라오도록 방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자격을 갖춘 청원들에 대한 정부의 답변이 국민을 만족시킨 경우는 과연 몇 번이나나 있는가?

청원게시판에는 그야말로 무의미한 글들이 수도 없이 많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필요 이상으로 보장되는 익명성’이라고 생각한다. 청원게시판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본 분이라면 알겠지만 글을 올리는 데 필요한 것이라곤 소셜 로그인 절차뿐이다. 특히 구글 계정의 경우 본인 인증 없이도 2분 만에 계정을 만들 수 있다. 쉽게 말해 내가 글을 쓰고 싶으면 아이피를 달리해서 새로 아이디를 만들고 이를 무기삼아 아무런 글이나 제멋대로 써재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자신의 신상정보부터 입력하게 한 다음 청원 글을 올리게 한다면 얼토당토않은 글들이 마구잡이로 올라올 수가 있을까?

또 다른 문제는 현 정부의 친 페미니즘적 스탠스를 청원게시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홍익대 모델 몰카, 여성 징병제, 낙태죄 폐지 관련 청원에 대한 글들은 인터넷에서 조금만 뒤져봐도 금세 찾아낼 수 있다. 현 정부의 페미니즘적 성향이 국민 소통의 장에서마저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형국이다

지금의 청원 제도는 그저 화날 때 자신의 공격성을 풀어놓는 화풀이의 장이자 마녀사냥의 성지와 같다는 느낌이 짙다. 청와대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사안만을 골라 응답하고 대응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실제로 심각한 사안인데도 청원 참여자 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답변을 내놓지 않는 것도 문제다. 제주도 예멘난민 문제나 무고죄 관리에 대한 청원이 좋은 사례이다.

화제성은 있으나 실효성에서 의문이 가는 현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 이 정책을 발의하고 운영하는 청와대가 여론조작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국민은 그 정책의 유효성과 공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과 국민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소통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지 못하고 여론을 정부의 입맛대로 만들어내고 소통의 창구를 정부 의견을 일방적 전달하는 길목으로 간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청원. 좋은 취지만큼이나 좋은 방안도 같이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문병원 전 울산시의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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