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과 인생-‘크리드2’
링과 인생-‘크리드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07 2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크리드2>는 챔피언 벨트를 놓고 도전장을 내민 크리드(마이클 B 조던)와 왕년의 챔피언이었던 록키(실베스터 스탤론)가 락커룸에서 함께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크리드는 록키의 절친으로 과거 무명의 복서였던 록키에게 기회를 준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칼 웨더스)의 아들이다. 아폴로는 냉전 시절 구 소련의 괴물 복서인 드라고(돌프 룬더그렌)와 붙었다가 경기 도중 사망했다.

은퇴 후 우연히 크리드의 재능을 알아본 록키는 그의 코치가 됐고, 이제 막 챔피언 벨트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 크리드에게 록키는 이렇게 말한다. “링 위에 오르는 계단은 고작 3개지만 오늘 밤엔 마치 산처럼 높아 보일 거야. 링에 오르면 넌 철저히 혼자가 될 거야. 그리고 널 쓰러뜨리려는 적과 홀로 맞서 싸워야 해.”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복싱 영화의 전설이 된 <록키>시리즈는 사실 ‘인생’에 대한 영화다. <크리드>시리즈는 2006년 <록키 발보아>를 끝으로 막을 내린 <록키>시리즈의 뒤를 잇고 있다. 은퇴한 록키가 여전히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록키의 절친이었던 아폴로 크리드의 아들 아도니스 크리드(마이클 B 조던)다.

이번 2편에서는 크리드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드라고의 아들과 격돌한다는 내용이다. 그랬거나 말거나 <크리드>시리즈 역시 복싱을 통해 여전히 우리들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삶이란 게 그렇다. 그것은 복싱 경기에서의 링에 자주 비유되곤 한다. 챔피언 벨트를 눈앞에 둔 크리드에게 던진 록키의 조언처럼 인생이라는 무대도 링에 오른 복서처럼 철저히 혼자다. 시련이나 고통이라는 적에 맞서 결국은 혼자 싸워야 한다. 시련이나 고통은 늘 자신을 쓰러뜨리려고 덤빈다. 그 중에는 잽처럼 가벼운 공격도 있지만 어퍼컷이나 훅, 혹은 스트레이트처럼 묵직한 것들도 많다. 때론 치명적이기까지 하다.

물론 민첩한 몸놀림으로 피할 수는 있다. 하지만 늘 피할 순 없다. 잽이나 스트레이트를 피하면 훅이 달려들고, 가까스로 훅을 피하면 잘 보이지도 않는 깊은 곳에서 어퍼컷이 날아들기도 한다.

나 역시 공격을 할 순 있지만 어떤 공격으로도 시련이나 고통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건 챔피언이 됐다고 해도 마찬가지. 얻어터지지 않고서는 챔피언이 될 수가 없거니와 챔피언 벨트를 계속 유지하기도 어렵다. 챔피언이 되면 이젠 벨트를 노리는 수많은 도전자들에 맞서 다시 링에 올라야 한다. 방어전을 하지 않으면 벨트는 자동 박탈되니까. 산다는 게 그렇다. 늘 시련과 고통에 맞서 싸워야 한다.

해서 누군가 그랬다지. “쓰러지지 않는 것보다 다시 일어나는 게 더 중요하다.”고. 1985년작인 <록키> 4편에서 구 소련의 괴물 복서인 드라고에 맞서기 전 록키도 자신을 걱정하는 어린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링에서 계속 맞아 팔이 너무 아플 땐 상대가 차라리 내 턱을 쳐주길 바라지. 쓰러져 편해지게 말이야.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두려움을 이겨내고 문득 이런 마음이 생겨. 한번만 더 해보자. 한 라운드만 더 뛰어보자. 지금은 절망적이어도 다음 라운드는 모든 걸 바꿔 놓을 거야.”

<록키>시리즈의 각본은 대부분 주인공 록키 역의 실베스타 스탤론이 썼다. 가난한 무명 배우였던 스탤론은 직접 쓴 1편의 각본으로 주인공 록키 역까지 따내며 기회를 잡았고, 하루아침에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됐다. 마치 1편에서 챔피언이었던 아폴로가 준 기회를 무명의 복서였던 록키가 잡아 유명해진 것처럼.

그렇게 링과 스크린이라는 무대만 다를 뿐, 록키는 곧 스탤론 자신이었다.

<록키> 1편에서 챔피언 아폴로와 붙을 때 록키의 목표는 그냥 15라운드까지 버티는 거였다. 그리고 그는 해낸다. <록키> 1편의 각본을 쓰기 전까지 스탤론은 무려 32편의 각본을 썼지만 영화사로부터 모조리 퇴짜를 맞았고, 그에겐 임신 중인 아내와 함께 수중의 106달러가 전부였다고 한다. 그래도 록키가 “One More Round!”를 외치며 한 라운드만 더 버텼듯이 그 역시 한 편만 더 써보자는 마음으로 쓴 게 바로 <록키> 1편의 각본이었다. 그리고는 모든 게 달라졌다.

삶은 이기는 게 아니다. 누구든 버티는 거다. 또 성공이란 버티다 보면 우연처럼 다가오는 선물 같은 것. 사실 록키는 챔피언 벨트를 위해 링에 오른 적이 거의 없다. 그는 그냥 버티기 위해 링에 올랐다. 그게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고, 사람들이 록키를 사랑하는 이유였다. 쓰러진 록키가 다시 일어나면 왠지 나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들 인생도 마찬가지. 어차피 영원할 수 없기에 챔피언 벨트보다는 어떤 감동을 줄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2019년 2월 21일 개봉, 러닝타임 130분.

<이상길 취재1부 차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