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에 농업이 나아갈 길- ① 농업, 인류 대부분의 유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농업이 나아갈 길- ① 농업, 인류 대부분의 유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0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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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농업이 나아갈 길’이라는 주제로 7회에 걸쳐 글을 싣는다. (① 농업, 인류 대부분의 유산 ② 하우스농업으로 이룬 백색혁명, 제철 없는 채소와 과일 ③ 4차 산업혁명의 쌀, 빅데이터 ④ 4차 산업혁명이 만드는 VR농업 ⑤ 4차 산업혁명이 보여줄 AI농업 ⑥ 4차 산업혁명의 실체, 하늘의 최강자 드론 ⑦ 4차 산업혁명이 만든 지속농업의 불씨, 스마트 농업)

1. 농업, 인류 대부분의 유산

‘유네스코 세계유산’처럼 ‘세계 농업유산’도 있다. ‘농업유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UNESCO World Heritage Site)의 농업 버전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2002년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가치 있는 농업 시스템을 보전 대상으로 지정하는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Globally Important Agricultural Heritage Systems)’ 제도를 창설했다. 그 대상과 등재기준을 보면, 생태적 변화는 물론 사회적 환경 변화에 적응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해 온 살아있는 농업 시스템을 대상으로 식량 및 생계의 안정성, 농업 생물다양성, 지역 및 전통적 지식시스템, 문화·가치체계 및 사회조직, 경관의 특징 등 5가지의 등재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운영도 유네스코가 아닌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맡고 있다. 2018년 6월 현재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유럽 등 20개국의 50지역이 등재되어 있고 우리나라에는 완도와 청산도의 구들장 논, 제주 밭담, 하동의 전통 차 농업 등 3개소가 있다.

농업이 만든 걸작(傑作)의 특징을 보면 첫째,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이다. 농업유산에는 그것을 창조하고 유지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을 반복해온 지역 공동체의 지식, 기술, 관습 등이 포함되어 녹아있다. 인류는 농업을 통해 역사와 전통, 가족과 공동체, 정주지와 소속감 등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둘째, 농업유산에 숨어있는 과학적 원리이다. 청산도 구들장 논은 급한 경사 지형과 물 빠짐이 심한 토양의 자연조건에 대응하여 논에 온돌 구들장 구조가 적용된 독특한 과학적 시스템이다.

셋째, 환경적 가치로 자연과 사람이 연주하는 생태 협주곡이라 할 수 있다. 농업 생물다양성은 작물 재배나 가축 사육으로 다층·간작·순환 시스템으로 다양성을 추구하고 있다. 다층구조로 탄자니아의 기함바 농림업의 경우 교목, 바나나, 커피, 야채가 4개의 식물층을 구성하면서 사료작물 생산과 결합하여 토지이용을 극대화하고 있다. 중국의 벼-물고기-오리 시스템에서는 물고기와 오리의 순환사육을 하고 있다.

넷째, 사회·문화적 가치로 지역사회와 문화를 가늠하는 척도이다. 지역 공동체의 자발적이고 역동적인 노력을 통해 지식 시스템과 농업문화를 후대에 전승하고 독특한 지역문화를 형성하고 유지·지속시킨다. 하동의 풍다제(豊茶祭)와 한·중·일의 용신숭배기우제, 풍년기원제 등이 있다.

다섯째, 오감을 만족시키는 농업 경관적 가치이다. 기후와 지형, 토양, 수자원, 인간의 문화, 식량자원 등 모든 요소가 집약되어 있어 단순히 보는 것만이 아니라 청각, 후각, 미각 등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농업이 유일한 산업이다. 중국, 일본, 필리핀, 한국 등 벼 재배 지역에 나타나는 계단식 논은 산림·논·수로·주거지·하천이 연계되어 복잡한 기하학적 구조를 가지며, 특히 가을에는 역동적이고 환상적인 그림을 만든다.

여섯째, 경제적 가치로 생계 안정을 위한 농업-임업-어업-목축업을 연계하여 최적의 자연조합을 만든다. 산악지역에서는 농업·임업 연계 시스템을 기본으로 하여 목축, 양봉, 어업이 결합되어 있다. 강과 해안, 사막에서는 그에 맞는 최적의 조합으로 경제성을 높이고 있다.

이제 우리 마을도 농업유산이 될 수 있다. 농업유산은 전시된 문화재가 아닌 우리네 삶터이다. 지속적으로 농업활동이 있는 ‘살아있는 유산’이기에 과거와 현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라는 연속선상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농업유산은 ‘보존(Preservation)’이 아닌 ‘보전(Conservation)’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전통농법과 문화의 세대 전승, 지속가능한 농촌관광 개발 및 마케팅, 지역학교를 통한 전통지식과 농업유산 교육 등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인공지능 사회에서 농업·농촌이 가지는 의미는? 디지털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이 도래한 사회에서 농업·농촌은 자연과 사람이 물리적,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이다. 농업유산을 통해 위기에 직면한 농업·농촌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도전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윤주용 울산시농업기술센터소장/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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