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 정년’ 담론(談論)
‘육체노동 정년’ 담론(談論)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0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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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가동연한 확대(만 60세→65세) 판결에 따라 정년 연장 등 다양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1956년 일반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만 55세로 판결했다. 그 후 법원들은 육체노동자가 사고를 당했을 경우 55세까지 일할 수 있는 것으로 산정해 보상액을 정했다. 그러나 1989년 대법원은 “평균수명이 1950년대 남자 51세, 여자 53세에서 1989년은 남자 66세, 여자 74세로 늘어났다”며 ‘55세 판례’를 폐기했다. 이후 근 30년간 육체노동자의 정년을 60세로 보는 판결이 주를 이뤘다.

사고로 사망 또는 부상을 당했을 경우 손해배상액을 정하는 데 중요한 산정 기준이 되는 게 정년, 즉 ‘가동연한’이다. 직장인은 2013년 법 제정으로 2017년부터 모든 사업장에서 60세 정년이 의무화됐다. 기대수명이 높아질수록 은퇴연령이 상향돼야 경제활동인구와 연금수령자 간의 균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에서 육체노동 정년 65세의 판결이 나온 이유도 이의 연장선이다.

먼저, 노인 기준을 65세로 잡은 사람은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였다. 그는 보불전쟁 승리 후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65세 이상 ‘노인(老人)’들을 물러나게 했다. 하지만 정년이 없던 그때로서는 고령 근로자들에 대한 처우가 문제였다. 그래서 해법으로 도입한 것이 65세 정년을 명시한 노령연금제였다. 정년과 국민연금을 연계한 최초의 사회보장제도였다. 이때가 1889년이었으니 130년 전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시대에 신하들의 정년에 관한 규정이 있었다. 70세가 되면 벼슬에서 물러나는 게 관례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2011∼2016년 우리나라 은퇴 평균연령은 72세다. 기대수명 증가 속도를 감안하면 유럽의 정년은 2040년까지 70세, 미국은 70세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 돼야 한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수명은 늘고 있는데 정년은 빨라지는 이상한 구조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세계적 추세인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따라 선진국들은 근로자 정년을 올리거나 아예 정년 기준을 폐지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정년 자체가 없는 대표적인 나라다. 1967년 정년을 만 65세로 정했던 미국은 1978년 70세로 상향 조정했다. 약 8년간 정년 70세를 유지했던 미국은 1986년 정년제를 폐지했다. 근로자 정년을 법으로 정하는 것 자체가 ‘나이를 이유로 한 또 하나의 차별’이란 여론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다.

이 판결에 따라 어떤 변화가 있을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지금 60세로 되어 있는 법정 정년도 언젠가는 육체노동 정년을 따라가겠지만, 지금 당장 연장되는 건 아니다. 공무원의 경우 예산이나 법령 문제가 있고, 민간 기업의 경우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나 노동인력 수급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달라지는 것은 보험금이다. 상해나 사망 사고 등을 당한 피해자에 대한 보험사의 배상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노인 기준 연령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노인복지법과 기초연금법에 노인은 ‘만 65세 이상’으로 돼 있다.

육체노동 정년이라는 것이 결국 노인 기준과도 연관이 크기 때문에 노인의 기준 연령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육체노동 정년 연장 문제가 세대 간 또 다른 ‘갈등의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다.

<신영조 시사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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