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 유역 역사문화 알기’ 답사 후기
‘태화강 유역 역사문화 알기’ 답사 후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04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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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걷는 태화강 길 시리즈로 태화강 100리 길 중에서 제2구간에서 만나는 울산의 역사문화 알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오전 10시 울산대곡박물관에서 출발해 울주 천전리 각석, 대곡리, 한실마을, 사연댐, 태봉산(경숙옹주 태실), 곡연마을까지 총 14km 구간을 걸었다. 30여 명의 참여자와 함께 신형석 박물관장의 안내로 태화강 상류 대곡천 유역의 역사와 인물에 대한 해설을 들었다.

울주 천전리 각석을 오랜만에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 유적이다. 상단에는 각종 동물문양과 동심원, 나선형, 음문, 마름모와 추상적인 문양이, 하단에는 신라시대 명문 등이 새겨져 있다.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는 추상적인 문양들이 전면에 분포되어 있다. 이는 농경의 풍요와 다산을 비는 일종의 종교적 상징으로 해석된다.

신라시대로 추정되는 금속도구를 이용하여 그어서 새긴 세선화에는 인물상, 배, 말, 용 그림도 있다. 명문은 법흥왕 동생 사부지갈문왕이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과 그의 부인이 남편이 죽자 흔적이 남은 이 계곡으로 어린 아들(후에 진흥왕)과 찾아왔다는 내용이 있다. 선사시대뿐만 아니라 고대사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유적이다. 세계적으로 드물게 자연사와 역사문화가 공존하는 중요한 유적지이다.

암각화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보존이 가능한 이유는 대형 화폭 같은 바위가 15도가량 경사진 형태라서 비바람에 견딜 수 있었을 것 같다. 실제 그 지역은 빗방울이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니 참 신기하다. 비도 쉬어 가는 산세인가보다. 풍화에 강하고 열에는 약한 점토암이라는 것도 다행이다. 대곡천의 힘 있는 물소리를 들으니 시원했다. 예전에 아이들과 와서 공룡 발자국을 찾기도 했다. 1억 년 전까지 시간여행을 갈 수 있다. 지금은 많이 발견되어 이곳에서만 130여 개가 있다.

물소리가 컸다가 작아지고 아예 들리지도 않는 곳도 있다. 그 물이 계속 흘러가는데도 말이다. 용이 물길 따라 미끄러지듯이 가다가 꼬리를 한 번 치는 느낌! 연암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에서는 물소리로 도를 깨치는데…. 유난히 곡선으로 돌아치는 곳이 많다. 드론으로 찍은 사진을 봤을 때 유선이 아름다웠다. 반구대는 거북이 한 마리가 엎드린 모습이 뚜렷하게 형상을 이루고 있다.

암각화박물관을 지나 반구대를 돌았다. 반구대 암각화는 세계적인 선사시대 유적지이다. 육지동물뿐만 아니라 고래까지 그려져 있어 선사인의 생활상을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최초의 포경 기록으로 고래잡이 기원의 단서가 되는 고래 6종이 발견되었다. 사냥과 종교, 예술적인 면에서도 가치가 매우 높다. 빼어난 절경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관리와 시인·묵객이 찾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어느 순간에는 알싸한 매향이 느껴지고 새벽녘에 내린 봄비에 노랗게 터져 나온 산수유 꽃망울을 마주하기도 했다. 쑥 올라간 쑥을 캐고 싶은 갈망을 누르고 걸음을 재촉했다. 옛날 선비들이 걸었다는 길을 걷다보니 봄 시들이 절로 떠오르게도 한다. 고려 말 포은 정몽주가 언양에 유배됐을 때 찾아 시름을 달래며 시를 지었다는 반구대(포은대)가 있다. 여기서 썼는지는 모르겠다. 정몽주의 <춘흥(春興)>이라는 시가 있다.

春雨細不滴(춘우세부적) : 봄비 가늘어 방울지지 않더니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 : 밤중에 희미하게 빗소리 들려라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 : 눈 녹아 남쪽 개울에 물 불어나니

多少草芽生(다소초아생) : 새싹은 얼마나 돋아났을꼬?

반구대와 맑은 기운을 모은다는 집청정을 그린 그림들이 매우 놀라게 했다. 겸재 정선의 <반구>와 고남명승첩에 실린 <언양 반구대>가 주인공들이다. 그만큼 많은 문인이 다녀가고 명승지로 이름을 날렸던 곳이다. 앞에 보이는 대동여지도에서 나오는 반구산은 거북이 등처럼 불쑥 솟아 있었다. 걷고 싶었던 한실마을을 돌아 언덕배기를 올라 걸었다. 점심으로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내 담소를 나누며 봄 소풍을 만끽했다. 언양 장을 방불케 할 만큼 풍성했다.

나무 사이로 댐이 보이더니 막상 다다라 보니 사연댐이 생각보다 컸다. 지역사연구가 박채은 선생의 사연댐 수몰 전 마을 전경을 사진으로 봤다. 대곡천의 물길 따라 옹기종기 마을을 이루고 있는 귀한 사진이었다. 옆에 UNIST 대학이 보였다. 설명을 들으니 지리적으로 명당에 대학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총명한 학생들이 더 빛을 발해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박물관 도슨트 선생님들의 차와 간식으로 배를 채우고 계속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걸었다.

조선 성종대왕의 경숙옹주 태실 근처에 왔다. 태를 담았던 백자 항아리는 도굴되었다가 중앙박물관에 있다고 했다. 근처에 식사하러 자주 갔지만 지나치던 곳이다. 답사 후 곡연마을에서 회송 버스를 타고 다시 박물관으로 돌아왔다. 답사 시간은 약 5시간 40분가량이 소요되었다. 울산의 문화와 역사를 잘 알게 되는 뜻깊은 행사였다. ‘반구대의 주인이 되자’는 박물관장의 말씀이 감동적이었다. 옛길을 태화강 100리 길로 만들어 역사와 관광의 울산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김윤경 여행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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