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삼촌의 사랑, 짜장면
외삼촌의 사랑, 짜장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04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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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과 함께 짜장면을 먹다가, 문득 사십 삼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 시절만 해도 짜장면은 초등학교 졸업식 때 딱 한 번 먹을 수 있었던 귀한 음식이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입학하기도 전에 먹을 수 있는 행운이 내게 찾아왔다.

외갓집 담장 아래에 봄까치풀꽃이 고 작은 쪽빛 웃음을 피우던 어느 날이었다. 오랜 세월 병상에 있던 외할아버지가 전복죽을 먹고 싶다고 했다. 외삼촌은 전복을 사기 위해 부산 자갈치시장으로 길을 향했고, 일곱 살이던 나는 강아지처럼 쫄랑쫄랑 외삼촌을 따라나섰다.

버스를 네 번 갈아 타고나서야 시장에 도착했다. 외삼촌은 외할아버지가 완쾌하길 바라며 가장 싱싱해 보이는 전복 두 마리를 샀다. 그 때 당시만 해도 전복은 자연산만 있었기에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외삼촌의 손을 잡고 시장을 지나가는데,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 냄새가 나의 코를 자극했다.

“외삼촌, 나 배고픈데예.”

“우리 애란이 뭐 먹고 싶노?”

“짜장면 먹고 싶은데예.”

“그래 짜장면 사줄게.”

힘없던 발걸음이 가뭄 끝에 소나기라도 맞은 풀잎마냥 생기가 돌았다. 드디어 짜장면이 나왔고, 보기만 해도 군침이 사르르 돌았다.

그런데 외삼촌은 짜장면을 한 그릇만 주문한 것이었다. 그릇을 내 앞으로 내밀면서

“우리 애란이 배 많이 고팠제? 얼른 먹어라.”

“외삼촌은 왜 안 먹어요?”

“나는 아침에 먹은 밥이 아직 소화가 안 되어서, 배가 안 고프다”고 했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입가에 묻은 까만 짜장도 아까워서 혀로 핥아먹는 나를, 외삼촌은 그저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철없던 난 외삼촌 뱃속에서 경적을 울리던 배꼽시계 소리를 듣지 못했다. 꿈에도 그리던 짜장면을 먹은 나는 그저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멀미를 심하게 한 탓에, 그 귀한 짜장면이 금방이라도 역류해서 올라올 것 같았다. 외삼촌은 조금만 더 참으라고 하면서 나를 달래었다. 하지만 결국 목적지까지 못 가고 하차하고 말았다. 그곳에서 외갓집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두 시간도 넘게 걸렸다. 훗날 알게 된 것은, 그날 전복을 사고 외삼촌 주머니엔 짜장면 한 그릇 값과, 집으로 돌아갈 차비만 남았었다는 것이다.

외삼촌은 점심도 굶은 채 그 먼 길을 걸어갔으니, 어깨에 바위라도 올린 듯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려 왔다. 그렇게 철없던 조카에게 무한 사랑을 베풀어준 외삼촌이 이제는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보면서 얼굴에 함박꽃 피우는 할아버지가 되었다. 머리에 내린 만년설도 멋진 외삼촌처럼 나도 그렇게 조금씩 단풍 들어가고 싶다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천애란 재능시낭송협회 울산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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