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태화강 백리, 뭇 생명체의 삶
3월 태화강 백리, 뭇 생명체의 삶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0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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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태화강 백리 뭍길에는 뭇 생명체의 삶이 살아나 ‘와’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태화강, 큰고니가 49일간(2018.12.31∼2019.2.17) 머무르다 떠난 뒤에는 백로의 마리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떼까마귀가 잠에서 깨어나는 시각이 점차 빨라지고, 왜가리 울음소리가 크게 들린다. 명촌은 출국하는 철새들의 공항대합실이다. 공작부인, 비오리, 뿔논병아리, 댕기흰죽지가 전세기편으로 먼저 떠났고, 가마우지를 태운 비행기도 뒤질세라 이륙했다.

태화강공원을 찾은 봄꿩은 <춘치자명(春雉自鳴) 구설분분(口舌紛紛>이란 말이 있듯 구설수 메이커다. 공원 꽃양귀비 밭에서 조심성 없이 ‘꿩꿩’하고 울어대는 탓이다. 꿩은 제 위치를 남에게 알려주는 어리석음으로 곧잘 비유의 대상이 되곤 한다.

사군탄, 키 작아 앙증스러운 광대나물은 연분홍 꽃을 탐스럽게 피우고 길손을 유혹한다. 꽃잎마다 “날 좀 보소” 하는 것 같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쉬지 않고 수다를 떨 것 같은 소리쟁이는 오히려 침묵으로 버텨 볼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낯설다. 몽실몽실 피어나는 갯가 버들강아지, 늙은 물총새가 날아와 한가롭게 깃을 고르니 참지 못한 간지러움은 가지마다 하얀 송이송이 웃음꽃으로 맺혔다.

낙안소, 누가 오리를 두고 ‘새 을(乙)’자로 봤던가.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붉은색 스타킹으로 갈아 신고,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저만큼 가거라, 뒤태를 보자.” 하더니 이윽고 한 일(一)자로 놀기 시작한다. 이마에 흰 띠를 두르고 까만 옷을 차려입은 물닭은 이제 찬물보다 폭신한 뭍을 찾아 봄처녀마냥 파릇파릇 새싹을 가슴에 담는다. 청머리를 자랑하는 청머리오리, 홍머리를 내세우는 홍머리오리, 끼리끼리 모여 자기자랑 줄다리기를 종일토록 하고 있다.

오동통 알 밴 잉어가 산란 터를 찾아 물가에서 헤엄친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늙은 삵이 아침 안개를 틈타 민들레같이 몸을 낮추어 숨어든다. 때맞추어 지나는 길손 굴뚝새. 검고 작은 몸집에 성질 하나는 대단하다. 짧은 꼬리까지 한껏 치켜세우고 ‘짹 째재잭’ 큰소리로 삵을 나무란다. 가려는 길에서 뜻밖에 만난 삵이 못마땅한 모양이다. 삵은 수도승처럼 눈을 감고 애써 외면하다가도 굴뚝새의 끈질긴 경계소리가 성가신 듯 조심스레 발길을 옮긴다.

외톨이 뿔논병아리는 물위에 요염한 자태로 누워 깃 고르기에 여념이 없다. 지나던 왜가리가 낯이 뜨거운지 고함을 지르지만 아랑곳없이 보란 듯 다리를 쳐들어 딴 짓을 해댄다.

수달 가족 네 식구. 낙안소 넓은 마당을 제 정원인양, 양식을 갈무리해둔 곳간인양 여러 대에 걸쳐 눌러 살고 있다. 맑은 날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첨벙첨벙 물소리까지 내며, 보는 이가 있거나 말거나 신나게 놀기 바쁘다. 그들은 또 베테랑 스킨스쿠버처럼 물속 행동에 거침이 없다. 조금 전 잠수했나 싶은데 어느 새 저만치 멀리서 불쑥 머리를 내민다. 잡은 물고기를 수구(水球)하듯 서로 주고받는가 하면 수면에 패대기치기도 반복한다.

해연(蟹淵·게못), 까만 올리브를 태화강에 흩어놓은 듯한 물닭, 솜뭉치를 물위에 풀어놓은 듯한 삼삼오오 떼 지어 노니는 논병아리의 나잠(裸潛), 물장구치며 자맥질하는 수달 가족, 립스틱 붉게 바른 붉은부리갈매기… 이들 모두 해연에서 하루해를 보낸다. 이렇듯 태화강 백리 물길은 그들의 숨비소리가 한시도 끊이지 않는 건강한 삶의 터전이다.

장구산, 하루의 시작은 배리끝 멧비둘기의 울음소리로 시작된다. 3월의 태양이 버들개지의 가슴을 부풀게 하면 멧비둘기는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종일토록 ‘구구구’ 애처롭게 운다. “마누라 죽고, 자식 죽고 나 혼자서 어떻게 살꼬? 구구구.” 할머니가 들려준 멧비둘기의 전생 이야기다.

딱새는 일찍이 사랑놀이가 끝났는지 높은 가지, 낮은 가지 옮겨가며 집터라도 구하는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분주하게 날아다닌다. 까치는 일찌감치 높은 가지를 눈으로, 낮은 가지를 발로 재더니 전망 좋은 높은 가지를 찾아 남쪽으로 대문을 내고는 요란스레 들락거린다. 때까치는 소리도 없이 “때 이르다, 때 이르다” 하며 좌우로 꼬리만 흔들어댄다.

뱁새가 조잘거리며 무리지어 마른 한삼덩굴 속으로 몰려다니는 곳, 참매가 쏜살같이 물닭을 낚아채어 허기를 채우는 곳, 삵이 딸을 데리고 산책하는 곳, 고라니가 한 배에 세 식구를 순산한 곳, 모래밭에서 늙은 삵의 발자국을 볼 수 있는 곳, 배리끝 바위틈에서 하루 내내 기도하는 듯 두 손을 모은 다람쥐를 만날 수 있는 곳…. 이렇듯 태화강 백리 뭍길은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활기찬 삶터이다. 실로 경이롭지 아니한가! 이것이 바로 3월, 태화강 백리 속에 녹아있는 뭇 생명체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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