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소리 쓴소리]‘박상진 가족사’ 집필한 증손 박중훈
[단소리 쓴소리]‘박상진 가족사’ 집필한 증손 박중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3.03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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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3월 5일, 부산일보에 ‘식량이 끊긴 선열 유족’이라는 제하의 충격적인 기사가 대서특필됐습니다. …지금 살펴봐도 너무나 면목 없는 이 기사의 주인공은 바로 우리 울산이 자랑하는 고헌(固軒) 박상진 의사의 부인 최영백 여사였습니다.”

3월 1일 오전 울산문예회관에서 진행된 3·1절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송철호 울산시장이 낭독한 경축사의 첫머리 글이다. 울산시 북구 송정동에서 기거하던 최 여사가 아들(박경중)의 ‘솔가이주’ 결심에 따라 부산으로 이사한 때는 1957년 늦은 봄. 박경중은 어머니를 비롯한 10식구의 생계문제로 고민하다 ‘유일한 재산’ 논 다섯 마지기를 처분한 돈으로 부산진구 부암동에서 재기의 의욕을 불태운다. 부산일보 보도는 불과 4년 뒤의 일.

고헌 생가를 13년째 지켜온 증손 박중훈(65, 북구문화원 이사)이 오랜 망설임 끝에 가족사를 책으로 펴내기로 했다. 원고에서 그는 부산생활의 실상을 이렇게 떠올린다. “채소농사와 양계로 새 삶을 설계한 박경중(고헌의 아들/ 박중훈의 조부)의 꿈은 두 차례의 닭 도둑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열두 식구에게 수입이라고는 밭에서 나는 작물을 며느리가 장에 내다 판 푼돈이 전부였다.” (그는 증조모 최 여사와 송정에서 4년, 부암동에서 3년, 통틀어 7년간 한집에서 살았다. 식구가 ‘10명’에서 ‘12명’으로 불어난 것은, 울산에서 3남2녀를 두었던 모친 이갑석 여사가 부산에서 1남1녀를 더 두었기 때문이다.)

박중훈의 기록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1961년 3월 5일자 부산일보에는 배고픔과 병에 시달려 얼굴이 부은 최여사란 제목의 기사와 최영백이 누워있는 모습의 사진이 함께 실렸다.” 신문기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매일처럼 학교에서 쫓겨 오는 박 옹(박상진 의사)의 증손들은 없다는 설움에 한없이 울고 있다. …팔십 노모(최 여사)가 생존해 계시는데 ‘떳떳이 따뜻한 밥 한 그릇 해드리지 못하는 신세가 원통하고 한스럽다’고 말하는 박경중 씨의 가족들은 싸늘한 보리밥도 제대로 못 이어 때로는…”

부산으로 이사 갈 당시 4살이었던 박중훈은 증조모 최 여사를 가까이서 지켜본 7년간의 경험을 그의 원고에 이렇게 담는다. “부산생활은 ‘비참’ 그 자체였다. …시집오자마자 시작한 어머니의 양식 꾸기는 부산에서도 어김없이 계속되었다. 손님이라도 오시면 어머니의 속은 타들어 갔다. 양식을 늘리기 위해 시래기나 무밥을 지었다.”

가족사 집필을 마무리한 박중훈에게 남은 일은 출판사 탐색. 저서의 부제는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과 가족들의 이야기>이고 가제는 <역사, 그 안의 역사>다. 집필순서는 ‘기록의 역사-추억의 역사-기억의 역사-왜곡과 음해의 역사’ 순이다. 박중훈은 증조부보다 증조모의 한 많은 인생사를 더 소상히 안다. ‘남편의 체포-6번의 재판-남편의 감옥살이와 구명운동-사형집행, 그리고 장례’가 녹아들어간 ‘추억의 역사’의 중심은 당연히 증조모 최영백 여사다.

서문에는 이런 글이 올라 있다. “(박상진 의사의) 남은 가족들은 처절한 삶을 살아야 했다. 대를 이어서도 그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더불어 대를 이은 악연도 먼 후일 이 땅에 살 후인을 위해 기꺼이 기록으로 남긴다.” 책에는 경주 최부잣집 가문 출신인 최 여사와 그녀의 사촌동생 최 준 사이의 양보 없는 재산분쟁, 장택상 가문과의 대를 이은 악연 이야기도 들어간다. 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는 의연금 출연을 거부한 경북 칠곡군의 친일부호 장승원(장택상의 父)을 1917년 11월 9일, 부하들을 시켜 사살한다. 장승원의 으리으리한 저택 담장에는 ‘조국 광복에 협조하지 않는 대죄인을 처단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이 붙는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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