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제대는 서울대와 국적이 다르다
경성제대는 서울대와 국적이 다르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27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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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월은 졸업과 입학의 계절이다. 그래서 관련되는 단상을 하나 소개한다.

서울상대를 졸업한 몇 년 후 어느 해 서울대총동창회 행사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앞에 나와 발언하는 사람을 ‘전(前) OO회’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소위 일정시대의 경성제대 출신이라는 얘기였다. 과연 그들을 서울대 동창이니 선배니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강하게 일었다. 우리 겨레는 지난 세기 전반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 일본인으로 살아야 했던 아픈 과거가 있으니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뭔가 찝찝한 점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2016년에 받은 서울상대 인명록의 상과대학 연혁에는 1907년에 일본 동양협회전문학교 경성분교로 시작해 1920년 ‘경성고등상업학교(약칭 고상)’로 교명을 변경했는데, 이 해 졸업생 140명이 모두 일본인이었고, 한국인 첫 졸업생은 1925년 제5회로 졸업한 5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1944년 경성경제전문학교로 개칭된 후 광복 후인 1946년에 대한민국 국립대학교 설치령에 따라 서울대학교에 편입되었다. 1945년 이전까지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일본인들을 위한 학교였던 셈이다.

졸업생 명단에도 한국인 졸업생 명단이 5회 5명으로 시작해서 제24회(1943년 졸) 37명, 경성경제전문학교(약칭 경전) 1회(1944년 졸) 30명, 2회(1945, 46년 졸) 107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문제는 학교의 국적이 일본이었고, 일본인들이 주로 다녔던 고상과 경전을 우리나라 국적인 서울상대의 전신 또는 맥이 이어지는 학교로 보아, 그 졸업생들을 우리의 선배로 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모교인 부산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부산고의 전신이라는 부산공립중학교는 일정시대였던 1913년에 설립되어 광복 이전에는 일본에 세워 일본인만 다니는 학교였고, 극소수의 한국사람(친일파?)도 다녔다. 그런데,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에 대한민국에서 6년~5년제 부산공립중학교로 설립해 1950년에 부산고등학교로 인가되고 1951년에 중고등학교가 분리된 부산중고등학교 동창회 명부에는 ‘구제(舊制)’라고 하여 1945년 이전 일본 학교 졸업자 44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처럼 부산고도 일정시대 일본 국적의 일본인 학교를 대한민국 부산고등학교의 전신으로 인정하고 있고, 이런 사정은 전국 도시명 학교(대구, 대전, 서울 등)가 비슷한 것으로 안다. 반면, 도명(경남, 경북, 충남 등) 고등학교는 일정시대에도 한국인들이 다니긴 했으나 일본 국적의 학교였는데, 학교별로 졸업 회수를 따질 때 광복 이전을 포함하는 학교도 있고, 광복 후부터 계산하는 학교도 있다. 예를 들어 2019년 경기고교 졸업식 행사 안내를 보면, 1910년대 개교를 기준으로 ‘제115회 졸업식’이라고 안내하고 있고, 경북고교의 개교기념행사 회수도 같은 방식이다.

나는 지난번에 ‘일제시대’ 또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 이름이 그 당시를 살았던 윤봉길·이봉창 등 광복투사들의 국적을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으로 만드는 것이 된다고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경성제국대학과 고상, 부산공립중학교는 일본 국적의 학교다. 반면, 현재의 서울대학교나 부산고등학교는 대한민국 국적의 학교다. 아픈 역사의 한 단면이지만, 일본 학교 출신을 대한민국 학교의 선배로 연결시켜 동창관계로 보는 것은 국적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행위다.

특히 일본인들만 다닌 학교는 각별한 친일파가 아니면 도저히 다닐 수 없는 사정이었기 때문에 그런 철저한 친일파들을 선배로 받아들이는 것을 후배인 나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일정 때부터 있었던 많은 우리나라 중·고교나 대학 동창회에서는 이 같은 학교의 국적 문제를 분명히 짚어 역사를 바르게 정립하면 좋겠다.

<박정학 역사학박사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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