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배 할매, 제대로 뿔났다!
할배 할매, 제대로 뿔났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25 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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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 속담이 있다. ‘함함하다’는 ‘털이 보드랍고 윤기가 있다’는 뜻으로, 이 속담은 털이 바늘 같은 고슴도치의 지고지순한 모성애를 연상시킬 때 쓰는 말이다. 우리 부부가 손주 녀석을 돌본 지 10년이 지나다보니 고슴도치 사랑은 식어버린 지 오래다. 그냥 마지못해 돌본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뿔이 돋을 대로 돋아 파업 날짜만 저울질한다고나 할까.

경주시 양남면의 원자력 사택에서 평화롭게 지내다가 자녀들이 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니 덜컥 겁이 났다. 결국 입시라는 굴레가 우리 가족을 울산으로 내몰고 말았다. 잘 자라준 덕분에 아들은 학성고를 거쳐 서울로 올라가더니 변호사로 자리잡았고 율사인 며느리와 일가를 이루면서 손주 녀석도 하나 더해졌다. 지금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서울 사돈집에 들어가 살고 있으니 데릴사위 같기는 해도 엄연히 박가 가문의 자손인 것만은 틀림없다(이하 친박).

간호학을 전공한 딸은 전문직으로 근무하던 중 사내 커플이 되어 석씨(昔氏) 가문으로 시집가는 바람에 손주 녀석이 두 놈 더 생기고 말았다(이하 비박). 젖 떼기 전부터 거두었으니 맞벌이 자녀를 둔 할배와 할매의 표본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게다. 팔불출 같지만 이 글을 쓰겠답시고 이틀이나 자동차로 다닌 거리와 걸린 시간을 측정해보니 평균값이 8킬로미터에 25분이다. 뛰어다닌 코스는 사위 집, 필자 집, 초등학교, 학원1, 학원2이었고, 등하교 시간은 요일마다 천차만별이었다. 하교시간은 월요일 4시 10분, 화요일은 2시 50분, 수요일은 3시 20분, 목요일은 2시, 금요일은 4시 10분, 토요일은 12시 20분 하는 식이었다.

등교시간은 통상 8시 40분이지만 가끔 수업 전 특활반 교육이 있을 때는 큰 녀석을 8시까지 먼저 등교시켜야 한다. 그렇잖아도 깜빡깜빡하는 나이에 왜 이다지도 기억할 시간 스케줄이 복잡해야 하는지 화가 치밀 때가 많다. 그래도 혹시나 잊어버릴까 싶어 손주들의 시간표는 아예 차 안에다 붙여 놓았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비박들의 등교시간에 맞춰 깨우고, 씻기고, 갈아입히고, 먹이는 일이다. 학교에 태워주고 나면 다시 할매를 집에다 데려다주고 사무실로 출근한다. 혹시 출장이나 행사로 빠질 때는 할매가 이 모든 것을 도맡기 위해 작심하고 며칠간 사위집에 머물기도 한다.

요즘은 토요일 오후가 목 빠지게 기다려진다. 딸 내외가 퇴근길에 비박들을 몽땅 데려가기 때문이다. 이후 시간은 월요일까지 자유롭고 주일날은 하나님에게 드리는 예배로 진정한 영육의 휴식을 얻는다. 몇 년째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허우적거린다는 소문이 팔도강산에 쫙 퍼져서일까, 어느 후배 결혼식장에서 옛 동료들과 정담을 나누던 중 황모 후배가 한 고백에 그만 웃음꽃이 만발한다. 얘기인즉, 딸의 혼사 전 사위에게 “신혼집은 반경 100km이상 떨어져 있지 않으면 내가 이사 가겠다”고 단단히 서약서까지 받아두었다는 것이다. 참 현명한 처사이니 박수라도 보내야겠다.

자녀를 시집장가 보낼 때는 아이들이 살 집과 취직만 걱정거리가 아니다. 출산 후 후세대를 양육하는 문제도 큰 고민거리이다.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풀기 위해 학교 수업시간을 통일시키고 ‘주 52시간제’를 교육현장에서부터 먼저 시행하라고 촉구하고 싶다. 틈만 나면 학원으로 내몰 것이 아니라 교과과정을 내실 있게 짜서 모든 시간을 교실에서 보내게 할 수는 없을까. 그렇게만 한다면 학부모들도 직장 일을 마치고 아이들을 하교시간에 자연스레 만나 웃음꽃을 피우며 데려가지 않겠는가.

국가발전과 자식교육에 혼신의 노력을 다한 노인들도 노후에 휴식을 취할 권리가 얼마든지 있다.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친박을 거두어주신 서울 사돈에게 괜스레 죄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한 감사함에 머리를 숙인다.

<박재준 NCN 전문위원 에이원공업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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