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새는 낭게 자고”
“새는 새는 낭게 자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24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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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새는 낭게 자고, 쥐는 쥐는 궁게 자고, 소는 소는 마구 자고, 닭은 닭은 홰에 자고, 납닥납닥 송에새끼 바우알로 잠을자고, 매끌매끌 미꾸라지 국케속에 잠을자고, 우리 같은 애기들은 엄마품에 잠을 잔다.> (자장가 중 일부)

우리 조상들은 갓난아기 시절부터 생태환경 교육을 지속시켜 왔다. 그 대표적인 행위가 자장가이다. 조상들은 자연관찰을 바탕으로 자장가 가사를 모아 일찍부터 자식들에게 생물의 서식환경의 중요성과 인성의 감정을 풍부하게 전승시켰다.

자장가를 예시하면서까지 이 글에서 부각시키고자 하는 부분의 가사는 ‘새는 새는 낭게 자고…. 닭은 닭은 홰에 자고’이다. 새와 닭은 야금(野禽)과 가금(家禽)으로 나무에 둥지를 틀고 횃대에 앉기에 둘 다 반드시 나무가 필요하다.

야생의 새들을 관찰하다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곳이 있다. 바로 나뭇가지가 엉성한 곳이 아니라 얽히고설킨 곳이다. 그 이유는 물론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이다. 새들은 야생에서 늙어 자연사하기 위해서는 항상 포식자로부터 주변을 경계하고 몸을 숨기는 일이 필수이다. 이러한 행동과 긴장은 하루 스무네 시간도 모자란다. 야생의 새들은 미처 느끼지 못한 포식자의 예고 없는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포식자가 쉽게 접근하지 못할 곳을 찾아 몸을 숨긴 채 깃 고르기를 하며 쉬거나 잠을 자기도 한다. 간혹 사람의 눈에 거슬리는 나무라 할지언정 새들에게는 목숨을 이어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나무인 셈이다. 새들이 이동하는 데 있어 중간 중간 나무가 없으면 이동하는 데 따른 위험도가 높게 나타난다. 나무가 많은 곳에서 다양한 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것도 큰 숲이 새들에게는 몸을 숨기기에 더없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태화강을 중심으로 새들을 관찰·조사하고 기록한 지도 어전 20년 남짓이다. 관찰을 통해 혹부리오리의 모래톱, 참새의 대숲, 찌르레기의 대숲, 까치의 대숲, 해오라기의 섬 등 나름대로 이름을 붙인 장소가 있다. 그곳을 찾으면 열에 아홉 번은 쉽게 관찰할 수가 있다.

울산 중구 다운동 구름공원 구루미길 코앞 태화강에는 작은 하중도(河中島=강이나 하천에 홍수가 닥치거나 물 흐름이 느려지면서 퇴적되어 자연적으로 생긴 섬) 두 개가 있다. 하중도에는 큰 나무와 작은 나무가 어지럽게 섞여 자라고 있었다. 때로는 큰물에 떠내려 온 쓰레기가 가지에 걸려 오가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을 말하는 이유는 지난 10년간 해오라기가 관찰된 해오라기의 은신처 및 휴식처였기 때문이다. 이곳을 필자는 ‘해오라기의 섬’ 즉 ‘사도(?島)’라 불렀다. 이곳은 삼호 섬이 넓은 수면을 거울삼아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아름다운 풍광의 장소이기도 하다. 해연(蟹淵=게가 많은 연못)으로 부르던 넓은 지역에는 가끔 삵과 수달이 관찰되고, 큰고니 가족 여섯 마리가 해넘이로 찾아와 해맞이로 관찰되던 곳이다.

이틀에 한 번꼴로 해오라기 섬을 찾는다. 하루는 머리 감은 아내의 민낯을 대하듯 사도가 무척 낯설었다. 우수(雨水)에 버들강아지 솜털 부풀리고 봄바람에 긴 꽁지깃 한껏 치켜세운 장끼가 까투리 곁에서 우쭐거리던 얼마 전 사도가 마치 그루밍(grooming)한 푸들강아지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것을 목격했다. 순간 가슴이 아팠다. 해오라기 은신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곳저곳에 수소문을 해도 나무를 정리한 주체를 알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잘려나간 그루터기에 움이 다시 트기를 기다려야겠다.

하중도 나무를 미련 없이 선뜻 베어낸 일의 정당성과 합당성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나뉜다. 첫째, 큰 비가 오면 나무로 인해 범람한다. 둘째, 쓰레기가 걸리면 제거하기가 어렵다. 이러한 연유로 태화강의 물억새를 베어내고, 대숲을 간벌하고, 갈대를 태웠다. 목적은 오직 깨끗하게 하는 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장면을 접하고 나서 힘주어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하중도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나무는 망설임 없이 선뜻 베어낼 정도로 가치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해오라기의 생태적 기본요소는 물, 먹이, 은신처 등 세 가지다. 생태조경에서도 이를 항상 염두에 둔다.

해오라기의 먹이활동은 주로 여울에서 관찰되지만 몇몇 태화강 여울은 사람들의 동선과 겹치기 때문에 해오라기가 찾지 않는다. 태화강의 나무를 함부로 잘라내서는 안 된다. 설령 나무의 윗부분을 잘라 키를 낮출지언정 발같이 드리운 가지는 결코 자르지 말라는 얘기다. 앞으로는 전문가의 조언, 제언, 자문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지역 전문가를 활용하지 않고서는 지역사회 발전의 수레바퀴를 더 이상 돌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동성(同姓) 아줌마가 떡도 커야 사 먹는다.’는 속담도 인정에 치우치기보다 실리적으로 접근하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덤불이 우거져야 족제비가 나온다!’는 속담이 있듯이 해오라기는 발을 드리운 것 같은 환경의 나뭇가지가 필요하다. 그동안 깨끗하고 깔끔함이 중심이 된 태화강 관리의 고정관념을 바꾸어야 할 때다. 생태관광도시 울산을 즐겁게 찾아온 생태관광객에게 ‘국수 대신 수제비’를 내놓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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