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그놀리아 - '있을 수 없는 일'에 관해
매그놀리아 - '있을 수 없는 일'에 관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2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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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교양을 중시하는 사람에게 욕설은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온통 욕 투성이다. 어쩌면 본인도 빡치는 일이 생기면 불현듯 입에서 욕이 튀어 나올지 모른다. 이쯤 되면 욕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있을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인간들에겐 시련이나 고통도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니까. 난 행복해야 하니까. 하지만 시련이나 고통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이란 영화에서도 주인공 선우(이병헌)를 고문하면서 백 사장(황정민)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다들 그토록 행복을 간절히 원하는데도 왜 삶은 온통 시련이나 고통 투성이일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 이 물음에 대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29살의 어린 나이에 찍은 <매그놀리아>를 통해 시련이나 고통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그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났던 희귀한 일 세 가지를 먼저 제시한다. 대표적인 일로 미국에서 산불이 나 소방비행기가 해당 지역에 물을 뿌렸는데 스킨스쿠버 한 명이 같이 떨어져 높은 나무에 걸려 죽고 만다. 알고 봤더니 그는 인근 호수에서 잠수를 하고 있었는데 비행기가 물을 담는 과정에서 휩쓸려 탱크로 들어가게 됐다. 더 놀라운 건 그 스킨스쿠버와 비행기 조종사는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것. 그 일로 조종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산불 현장에 떨어진 스킨스쿠버라. 세상엔 '우연'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긴 하지만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후 영화는 미국 어느 한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그려나간다.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지만 그들은 지금 다들 고통 받고 있다. 부와 명예를 가졌지만 암에 걸려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들, 그런 그들이 소싯적 잘못된 선택으로 망친 자식들, 부모의 강요에 의해 지금 고통 받고 있는 아이, 거짓된 삶을 살아오다 비로소 깨달음을 얻어 힘들어하는 이들 등등. 한 마디로 인간 세상에 존재하는 고통이란 고통은 모두 담아내려 한 듯하다. 상처로 얼룩진 그들은 자신에게 고통을 준 이들을 향해 울부짖는다. 하지만 그건 그분(神)에 대한 하소연이기도 했다. 왜 내가 이렇게 고통 받아야 하냐는. 다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영화는 마지막에 무수한 개구리들이 비로 떨어지는 장면을 통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다고 감히 말한다. 사실 우리 인간들의 생각대로라면 세상에 어둠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빛을 선(善)으로 생각하니까. 허나 이 우주에서 어둠의 비중은 무려 90%가 넘는다. 빛은 고작 10%정도다. 그보다 생각을 뒤집으면 이 위험천만한 우주에서 우리라는 존재 자체가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 우주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위험천만하고 무미건조한 우주에 생명으로 가득 찬 지구라는 꽃이 우연찮게 한 송이 피었을 뿐이라는 것. 이 우주에서 우리들은 그렇게 하나하나가 모두 기적 같은 존재다. 아직 우리밖에 없는 것 같으니까.

어쩌면 삶이 고통으로 가득 찬 건 이 우주가 어둠으로 가득 차고, 생명체가 귀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 인생이라는 우주에서도 행복은 그저 한 송이 꽃 같다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클라우디아(멜로라 월터스)다. 그녀는 어려서 친부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로 인해 지금 마약과 매춘에 빠져 사는 불행한 존재다. 그래서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 동안 그녀의 웃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하지만 우연히 만난 경찰관 짐(존 C. 라일리)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마지막 장면에선 활짝 웃는다. 마치 꽃이 피듯이. 그렇게 고통 속에서도 화해와 용서, 사랑이라는 꽃은 핀다. 제목인 매그놀리아(Magnolia)는 '목련'이라는 꽃을 의미한다. 목련은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를 견뎌낸 뒤 3~4월에 피는 꽃이다. 2000년 4월15일 개봉. 러닝타임 18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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