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까지 걷다
책방까지 걷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2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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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방에 자주 가는 편이다. 그 안 아늑한 곳에 깨끗하고 네모난 카페가 하나 있다. 그곳에 앉아 커피 한잔과 따끈한 맹물 한잔을 주문한다. 우선 어제 하루의 감상을 쓰고 마음 편한 내용의 신간서적을 몇 권 골라 읽는다. 은은히 들려오는 오르골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운이 좋은지 테이블 옆에는 향수병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판매용 견본인지 여러 개의 조그마한 막대가 하나씩 꽂혀 있다. 막대에서 울려 퍼지는 향이 감미롭지만 오히려 커피의 진한 향에 더욱 진하게 매료된다. 주변은 온통 신간서적들로 공간이 메워지고 소음이라고는 어디 하나 찾아볼 수 없다. 가끔 철모르는 꼬마 녀석이 엄마와 같이 외출 나와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냅다 큰소리를 지르는 것뿐이다. 사람 사는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기도 한다.

책방에 막 도착하면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는다. 그렇게 더럽지 않은 손이지만 맑은 정신을 위하여 찬물로 씻어버린다. 더욱이 집에서 이곳까지 걸어오면서 나름대로 ‘체조’를 한 탓인지 정신이 매우 초롱초롱하다. 그 모습이 보기에는 좀 우스꽝스러울지 모르지만 개의치 않으려 한다. 매일아침 지나쳐가는 공원오솔길, 가로수길, 보도블록길에는 행인들이라곤 별로 없으니까 더욱 그렇다.

걷기를 하면서 하는 체조는 특별나지 않다. 그저 좌우로 흔들어대면서 스트레칭 하는 정도다. 마치 육사생도같이 팔을 높이 치켜들고 당당하게 걷는 자세도 취해 본다. 어깨와 팔의 높이를 평행되게 하여 몸의 균형을 맞추어 걸어가기도 한다.

군데군데 건널목에 빨간 신호등이 켜 있을 때는 앉았다 섰다를 반복해 본다. 무릎관절의 유연함에 상당한 효과가 있어서다. 내가 다니는 건널목은 목적지 책방까지 네댓 군데가 있어 무릎관절에 충분히 자극을 줄만한 시간이다.

책방을 오가는 시간은 족히 1시간…. 이런 식의 걷기를 벌써 10년 가까이 해 왔으니 소개할 만도 하지 않는가. 운동시간을 일과에서 굳이 빼낼 필요가 없고, 건강도 유지하고 일상의 시간도 절약되니 일거양득이다. 이렇게 걷기운동을 꾸준히 해 가면서 집에 도착하면 말할 수 없이 활기찬 기분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올든버그(R. Oldenberg)는 1991년 발행한 그의 저서 ‘정말 좋은 공간’(The great good place)에서 스트레스 해소와 에너지 충전을 위하여 별도의 공간을 특별히 제시했다. 다름 아닌 책방, 카페, 바, 미용실 등의 ‘제3의 공간’을 들고 있다. 당연히 제1의 공간은 집이고 제2의 공간은 직장이다. 이 같은 제3의 공간이야말로 아무런 격식이 없고 소박하며, 수다도 떨 수 있는 곳이다. 더욱이 출입의 자유가 있고 음료도 마실 수 있으니 자유로운 장소임에 틀림없다.

우리 사회의 트렌드 예언가 김난도 교수는 ‘공간’에 대한 올해의 트렌드를 미리 예언했다. 흔히 보는 유통공간이 책방으로, 카페로, 전시회장으로 변신할 것이라고…. 카멜레온이라는 동물이 주변 상황에 따라 색깔을 바꾸듯, 현대인들의 소비공간은 이제 상황에 맞춰 변신하는 카멜레존(zone)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장의 급변에 따른 필연적 변화로, 위축된 오프라인 상권이 다시 고객을 모아야 하고, 날씨 변화에 따라 실내로 모여드는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야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고객이 바라는 참신한 ‘공간의 콘셉트’가 무엇이냐에 따라 성패를 판가름할 것이다.

제3의 공간 ‘책방’은, 어떻게 보면 자기계발의 좋은 장소가 되며 일과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정신적 공간이 된다. 내가 다니는 책방은 그야말로 소확행의 길로 가는 둘도 없는 첩경이라 할 수 있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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