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강사’가 되기까지
‘대한민국 대표강사’가 되기까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20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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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두 번 지나 20년이 흘렀다. 기념 서적을 내려고 과거를 정리하다보니 초보 강사 시절이 떠오른다. 아무도 나를 강사로 인정하지 않을 때였다. 어느 작은 기업체에 강의하러 간 적이 있다. 특별한 이름도 없이 혼자 강사라는 명함을 만들어 그동안 공부하고 익혔던 것을 강단에서 펼쳐보고 싶은 마음에 지인의 도움으로 강의 소개를 받은 것이다. 강의장이 아닌 밥을 먹고 있는 식당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막 시작할 때 강의를 듣던 사람들 중에서 “치아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만 하더라도 강사가 많지 않았고 더군다나 밥을 먹는 자리에서 강의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중소기업체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얼른 밥을 먹고 그늘에서 쪽잠이라도 자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금쪽같은 점심시간에 강의를 하니 쪽잠을 자는 시간도 줄어들고 강의도 듣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그 말을 못들은 척하고 강의를 계속했다. 한창 강의를 이어나가는 중 어디선가 먹던 김치 한쪽이 날아와서 강의 자료에 척 붙었다가 떨어졌다. 이 자료는 며칠을 고생해서 달력처럼 하얀 전지 위에 매직펜으로 손수 써서 만들었다.

순간 식당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나도 무척 놀랬지만 괜찮은 척 표정관리를 하면서 강의를 계속했다. 그랬더니 앞에 앉아 밥을 들고 있던 한분이 박수를 보내주었다. 아마도 어린 강사가 울 법도 한데 강의를 이어가니 불쌍해 보였는지, 아니면 딸아이 같은 측은한 마음에서 보내준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박수 소리에 용기를 얻어 강의를 계속했다. 강사라는 직업을 가지려면 꼭 거쳐야 하는 신고식이라 생각했고 오로지 “강의를 잘 마쳐야겠다”는 간절함도 배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강의를 하는 나를 향해 갑자기 식판이 날아온 것이다. 그 식판은 정확하게 나를 맞추고 식당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단정하게 차려입고 간 핑크빛 원피스는 김치와 각종 반찬으로 범벅이 되어버렸고 국물까지 뒤집어써서 엉망이 되었다. 식판으로 얻어맞은 나는 조용히 그 회사를 빠져나왔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게 자란 터라 온갖 서러움에 차 안에서 한참을 엉엉 울었다. 실컷 울고 나니 가슴 속에서 이상한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반드시 강사로 성공해서 꼭 그 회사에서 다시 강의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런 해프닝으로 인해 꿈을 접기에는 너무도 억울했다. 그 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휴일과 명절을 반납하면서 컴퓨터와 살았다. 차별화된 강의안을 만들기 위해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밤을 새워 자료를 만들었다. 그 결과 2012년과 2013년에 연이어 ‘대한민국 대표강사’로 선정되었고, KBS, mbc 방송 출연을 비롯해 기업체, 공공기관 및 각종 단체에서 강사 섭외가 이어지면서 강사 세계에서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 부러움은 때론 질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강의는 무형의 제품이며 상품이다. 그래서 사람 자체, 강사 개인의 이미지, 그리고 영향력이 아주 중요하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표정관리, TPO 관리를 하다보니 ‘인간 송인옥’은 간데없고 ‘강사 송인옥’으로 20년을 살아왔다.

대한민국 대표강사가 된 후에는 “더 잘해야만 한다”는 압박감과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했다. 돌아보면 틈틈이 책을 읽고 차별화된 강의안을 만들었기에 남들은 불경기라고 하는 때에 오히려 호황을 누리며 강의 일정이 빼곡히 잡혀있다.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다름의 만남을 주선한다. 내 사무실은 더 이상 강의장이 아니라 세상과 연결하는 카페테리아다. 세상은 다름의 만남이다.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소통을 이루어낼 때 더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고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내 직업 ‘강사’를 너무나 사랑한다.

<송인옥 ingo교육센터 코스케어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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