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쉬엄쉬엄 익혀야 재미를 알지 않을까?
배우고 쉬엄쉬엄 익혀야 재미를 알지 않을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19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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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의 ‘학이(學而)’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는 귀에 익은 구절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와준다면 즐겁지 아니한가,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화내지 않으니 이 또한 군자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학창시절부터 줄곧 이런 뜻으로 배웠고 별다른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최근까지도…

우리 울산대학교는 지난 10여 년간 국내 최초로 산학협력교수 제도를 채택하여 정착시켰다. 많은 산학협력교수들 가운데는 현대하이스코(현.현대제철) 부사장을 지낸 허주행 교수가 계신다. 커피나 술을 조금도 들지 않으면서 어떻게 임원이 되셨을까, 궁금증이 절로 인다. 종종 찾아뵙고 지난 얘기를 듣다보면, 회사의 문제점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남다른 시각의 번쩍이는 아이디어, 그리고 실행에 옮기는 신속한 추진력에 혀를 내두를 때가 많다. 최근 지천명(知天命=50세) 나이의 필자에게 해주신 말씀은 논어의 구절을 다시금 떠오르게 했다.

허 교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으로 첫째가 건강이요, 둘째는 친구요, 셋째가 경제력이라고 하셨다. “남은 인생을 건강하게 살려면 몸에 맞는 적절한 운동을 해야 한다. 남은 인생의 즐거움을 친구들과 함께 만끽하려면 친구들을 불러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여행도 같이 떠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잘할 수 있으려면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새삼 학이(學而)편의 ‘유붕(有朋)’을 떠오르게 했다. 하지만, 건강과 관련해서 해주신 말씀은 ‘배움과 익힘’에 대한 필자 나름의 해석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허 교수는, 100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강연과 글쓰기에 몰두하시는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를 닮고 싶다며 울산대에 오신 후 수영을 배우셨다. 아산스포츠센터의 새벽반 강습을 들으면서,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그 다음 시간대의 강습도 듣고, 개별 강습도 듣고, 배운 것을 익히려고 혼자 연습도 하셨다. 그러나 이른 새벽 2~3시간의 고된 수영 수련(修練)은, 시간이 갈수록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했고 수영의 재미를 앗아가게 만들었다. 이른 새벽에 수영을 배우러 가는 것이 좋았던 초기와는 전혀 다른 반대의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러자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수영 강습과 훈련의 양을 부쩍 줄이기 시작하셨다. 수영을 ‘쉬엄쉬엄’ 배우고 익히니, 다시금 재미가 생기셨다고 했다.

그렇다! 배우고 익히는 재미를 ‘쉬엄쉬엄’ 하는 방법에서 찾으신 것이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기쁨’은, 열정으로 배운 것이 본인의 것이 되게끔 ‘중간 중간 쉬어가면서’ 몸과 마음과 정신이 익숙해지도록 만드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명의 나무꾼 이야기가 있다. 나무를 하는데, 한 명은 중간 중간 쉬어가며 했지만 다른 한 명은 쉬지 않고 했다.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작업량을 살펴보니 쉬어가며 나무를 한 나무꾼의 양이 많지 않은가? 왜 그런지 살펴보니, 이 나무꾼은 쉬면서도 도끼의 날을 갈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배움과 익힘의 순간에도 ‘배움’이라는 나무를 벨 때 ‘익힘’이라는 도끼의 날이 무디어지지 않게 ‘쉬엄쉬엄’ 갈아주는 것이 필요치 않을까 한다.

한학에 대한 조예가 남다른 도올 선생은 공자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한다. ‘때에 맞추어 육예(六藝) 즉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기쁘지 아니한가/ 함께 배움의 뜻을 같이 하려고 여러 지역과 출신의 사람들이 와주니 즐겁지 아니한가/ 나의 이상을 실현해줄 명군을 만나지 못하였음에도 군자 됨을 추구하였기에 여한이 없도다.’라고…. 참 의미 있는 해석으로 여겨진다.

2월 중순은 학교 졸업 시즌이다.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졸업생들에게는 졸업식이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인지 대학에서는 보통 졸업식을 ‘graduation ceremony’라는 표현보다 ‘commencement ceremony’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초·중·고 졸업생들은 매년 같은 학급에서 친구들과 함께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보내니 친구들과의 정(情)이 기억 저편에 많이 남는 것으로 보인다.

학창시절 우리를 이끌어 주었던 책, 친구, 그리고 선생님들…. 배움과 익힘을 ‘함께’하는 재미, 배움과 익힘의 순간에서 맛보는 ‘행복함’을 알게 해준 친구들, 그리고 ‘쉬엄쉬엄’의 의미를 이제라도 깨우치게 해주신 선생님들…. 쉰 나이에 접어들어서야 그때의 친구들과 선생님들께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진다.

< 공영민 울산대 산업대학원 부원장 한국재료학회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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