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산업발전 과정 속 고향 떠난 사람들 이야기
울산 산업발전 과정 속 고향 떠난 사람들 이야기
  • 김보은
  • 승인 2019.02.18 2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향 떠난 지 벌써 20년…”‘산업도시 울산의 이주사’ 문화원연합회 자료집 펴내
울산시 문화원연합회가 펴낸 자료집.
울산시 문화원연합회가 펴낸 자료집.

 

“고향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산업이 발전하려면 희생자가 필요한 법이고 우리가 그 희생자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다 지나간 과거인데 내 인생은 이주와 함께 끝이 났고, 이제는 아이들에게 모든 운명을 넘겨 줘야지요….”

1938년 남구 여천동에서 태어나 과수원을 하던 한기성씨는 1966년 보상을 받아 1967년 중구 다운동으로 이사했다. 이주한지 20여년이 흘러 한씨는 지나간 과거에 대해 이 같은 아쉬움을 전했다.

울산시문화원연합회가 펴낸 자료집 ‘산업도시 울산의 이주사’에는 한기성씨를 비롯해 산업도시 울산으로 거듭나던 과정에서 고향을 내줬던 이주민의 이야기가 담겼다. 책에 등장하는 이주민들은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 온산국가산업단지, 댐수몰지역을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다.

울산의 이주사는 울산의 산업사와 맞물려 있다. 울산의 공단과 공장의 자리는 50여년 전만 해도 원주민의 삶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산이 ‘한국 산업근대화의 전진기지’로 선정되면서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내줬다. 문화원연합회는 ‘산업도시 울산’의 성장에 내재된 원주민의 양보와 희생, 섭섭함, 서러움, 그리움을 서술하는데 중점을 두고 책을 제작했다.

문화원연합회는 책의 서두에 “구술의 범위는 국가산업단지와 댐이 들어선 지역으로 제한했다”며 “작업과정에서 거듭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이주보상 관련사업의 시작과 마무리가 대체로 물리적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었다고 얼버무릴 수도 있겠으나 수몰지역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생략됐고 보상가 책정에서 이주민들이 고향을 떠날 경우 발생할 일터의 문제와 의식주 문제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용잠 옛터비.
용잠 옛터비.

 

이를 보여주듯 책에서 이주민들은 “자부심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보다는 고향이 없어지다 보니까 살아가면서 가보지 못하는 어떤 설움 같은 게 있다(김태용·남구 고사동)”, “제 나이가 80세인데 죽기 전에 꿈에라도 다시 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김영락·남구 용잠동)” 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울러 이주역사, 행정구역, 인근 문화재 현황, 애향비 현황 등을 실렸다. 울산에는 현재 용잠 옛터비, 남화동 옛터비, 용연 옛터비, 황암 옛터비, 망향탑, 양죽부락 옛터비, 온산공단 망향비 등이 세워져 이주민의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울산시문화원연합회 관계자는 “울산의 대표 향토문화 콘텐츠 발굴의 하나로 ‘산업도시 울산의 이주사’를 정리한 것이 자랑스럽다. 책의 갈피를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이주민들의 과거사를 상기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보은 기자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