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목욕탕 ② 무쇠솥과 울산양조장
우리동네 목욕탕 ② 무쇠솥과 울산양조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1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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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정동 고기업씨 가족, 무쇠솥 구입해 집에 목욕시설 갖춰 여성·아이들 목욕
-울산양조장에도 공동목욕탕 설치해

-직원들 7~8명이 한꺼번에 사용 가능

-고동원씨 “여러명 목욕하면서 물장난도…”



꼬깃꼬깃한 지폐들고 명절 연례행사처럼 다녔던 우리 동네 목욕탕. 그때도, 지금도 목욕탕은 동네의 사랑방이다.

대중 목욕탕의 시작부터 그 뒷이야기까지. 소소하지만 정겨운 목욕탕 이야기가 담긴 울산시문화원연합회의 ‘울산의 목욕문화’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주-



북정동에 살았던 고기업씨의 집은 큰 무쇠솥을 집안에 걸어 놓고 가족들이 목욕을 했다.

고씨가 집에 목욕탕을 건립한 것은 중앙시장 입구에 대중목욕탕인 울산탕이 문을 열 무렵이다. 고씨의 손자 고동원(73)씨에 따르면 울산탕이 생긴 후 북정동 남자들 중에는 울산탕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 무렵 그의 할머니가 “여자가 공중목욕탕을 가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해 할아버지가 집에 목욕탕을 따로 두었다.

당시 목욕탕에 걸렸던 무쇠솥은 1940년 고기업씨가 마산까지 가 구입했다. 탕은 어른 3~4명이 들어가 목욕을 할 수 있을 크기였는데 나중에 조흥은행장이 되는 고태진씨과 고씨의 아들 고원준 전 국회의원이 어렸을 때 모두 이 무쇠솥에서 목욕을 했다. 고동원씨는 “당시 우리 집에서는 어린이들이 많이 목욕을 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특별히 어린이용 나무 의자를 따로 맞춰 왔고 어른들은 삼각형 나무의자를 따로 두고 사용했다”고 말했다.

고씨 집에서 멀지 않은 울산양조장에도 공동목욕탕 시설을 해 놓고 직원들이 목욕을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울산양조장은 1928년 차용규·고기업·박준화씨가 북정동에 설립했다. 이 양조장은 해방이 되면서 고기업씨가 단독으로 운영하게 되는데 선거 때마다 술이 많이 팔려 고씨가 돈방석에 앉았다.

울산양조장은 옛날부터 양조장 내에 수질이 좋은 물이 많이 솟아 술맛이 좋다는 소문이 났다. 양조장은 술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뜨거운 물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 때 나오는 물을 수도를 통해 받은 후 공장직원들이 목욕을 했다. 목욕탕 시설은 직원 7~8명이 한꺼번에 목욕을 할 정도가 됐는데 추석과 설 등 명절날에는 직원 가족들도 함께 목욕을 했다.

당시 어린나이로 울산양조장 목욕탕에서 목욕을 자주 했던 고동원씨는 “당시 뜨거운 물이 담겨 있는 수조가 얼마나 컸던지 내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목욕을 하면서 물장난을 칠 정도로 탕이 넓고 깊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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