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水)·화(火)로 시작하는 세시민속
수(水)·화(火)로 시작하는 세시민속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1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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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이 내일이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보름이다. 보름은 달이 밝은 밤을 말한다. 해가 중천에 있은 뒤에는 서쪽으로 기울며(日中則?), 달도 차면 이지러진다(月盈則虧)는 것은 당연한 자연현상인데 정월 보름을 구태여 대보름으로 차별시켜 부르는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조상들은 새해 정월을 수(水)와 화(火)의 의식으로 한해를 시작했다. 세시민속에서 수·화(水·火)의 본질을 살펴본다.

먼저 ‘맑은 물’ 의식이다.

할머니는 한해가 시작되는 정월 초하루 새벽에 일찍이 목욕재계하시고 장독대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비손(=두 손을 비비면서 치성을 드리는 행위)을 하셨다.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외사촌 형님이 들고 온 부고(訃告)를 접한 즉시 정화수 한 그릇을 장독대에 올리셨다. 이어서 쪽머리를 풀어 산발(散髮)하고는 곡(哭)을 하셨다.

새해 아침에 조상께 올리는 만반진수(滿盤珍羞=상 위에 가득한 귀하고 맛있는 음식)를 ‘차례’ 혹은 ‘다례(茶禮)’라 부른다.

불가에서 매일 새벽 예불(禮佛) 의식을 청정수를 올리면서 행한다.

삼보전(三寶殿)에서는 ‘제가 올리는 깨끗한 물은 감로차로 삼보 전에 올리오니 원컨대 받아주소서(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三寶前 願垂哀納受)’ 혹은 ‘지금 감로차를 달이어 삼보님 앞에 올리오니(今將甘露茶 奉獻三寶殿)’, 신중당(神衆堂)에서는 ‘청정(淸淨)한 명다(茗茶)는 약(藥)으로 능히 병(病)과 혼침(昏沈)을 제거한다(淸淨茗茶約 能除病昏沈)’고 하고, 영단(靈壇)에서는 ‘백 가지 풀과 나무 중에 신선한 한 가지 맛, 조주가 많은 사람에게 항상 권했네, 청정한 강심수(江心水)를 돌솥에다 끓여…….(百草林中一味新 趙州常勸幾千人 烹將石鼎江心水)’라고 한다. 정화수의 화(華)와 청정 명다는 병과 혼침을 제거하는 지혜의 물인 것이다.

다음으로 ‘밝은 불’ 의식이다. 정월 대보름의 사회적 통념은 달집살이와 쥐불놀이다.

현재에 전승되고 있는 달집살이는 정월 대보름에 앞서 준비한 달집을 달이 솟아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달이 뜨면 달집에 불을 지펴 태우는 일을 말한다. 달집을 태우는 동안 풍물패가 함께하여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쥐불놀이는 논두렁 혹은 밭두렁의 마른 풀을 태우는 일을 말한다. 그 목적은 ‘쥐’로부터 곡식의 피해를 예방하고 줄여보자는 생각에서 주로 아이들의 몫으로 돌렸다.

달집살이와 쥐불놀이를 왜 하며, 하필이면 정월달에 거행할까? 이 물음에 어떤 사람은 “달집을 옛날에는 엄청 크게 만들었다”, “강변에서 했다”등 규모와 장소만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한해 농사가 풍년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하는 것이지 더 이상 무슨 뜻이 있겠나”라고 답한다.

두 사람의 답변은 달집살이와 쥐불놀이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달집살이와 쥐불놀이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벗어날 수는 없을까? 먼저 세시민속의 정의부터 살펴봐야 한다.

세시민속이 세시에 행해지기 때문에 세시민속인지 아니면 세시에 반드시 거행해야 하는 의식이어서 세시민속이라 부르는 것인지가 명확하게 정의되어야 한다. 세시민속의 정의는 당연히 후자 쪽에 힘을 실어준다. 왜냐하면, 달집살이와 쥐불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고 의식이기 때문이다.

달집살이와 쥐불놀이의 공통적 요소는 ‘불’이다. 불은 밝은 빛을 전한다. 빛은 어둠을 제거한다. 어둠은 철학적으로 지혜가 없는 어리석음으로 여긴다. 반면 밝음은 지혜를 상징한다.

한편 쥐불놀이의 ‘쥐’는 생물학적 의미의 쥐가 아닌 쥐방울, 쥐방울토마토란 낱말에서 보듯 ‘작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쥐불은 ‘작은 불’ 즉 소화(小火)인 셈이다. 물론 그 대칭되는 말은 ‘큰 불’ 즉 대화(大火)를 뜻하는 달집살이다.

쥐불놀이와 달집살이를 연계시키는 것은 아이와 어른의 지혜를 북돋우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정월에 동네사람이 다 모여 큰 불과 작은 불의 의식을 거행하는 것은 지혜를 증장시켜 바른 삶을 살기를 기원하는 무명퇴치 의식인 셈이다.

낮의 밝은 해와 밤의 밝은 대보름달을 합쳐 낮과 밤으로 밝은 명(明) 속에서 새해 원단(元旦)을 시작했던 조상들의 지혜 증장 의식을 되새겨야 하겠다. 현재 정월 세시민속이 풍물패들의 장단소리 요란하게 난무하는 ‘현상’만 보이고 지혜증장 의식이란 ‘본질’은 보이지 않아 아쉽다.

세시민속의 수·화(水火) 의식에 등장하는 물과 불의 본질은 결국 지혜를 북돋우는 의식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민속에 대한 본질적 접근이 민속 전승의 당위성이자 재현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한해의 풍년과 안녕 그리고 무사함을 기원하는 일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면, 지역문화의 진흥과 창달을 지향하는 전국 231개 문화원과 향토문화연구소의 존재가치를 굳이 거론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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