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 그가 코미디 영화에 집착하는 이유
극한직업 - 그가 코미디 영화에 집착하는 이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14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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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코미디 장르의 영화는 후반부가 중요하다. 끝까지 관객들을 웃겨 주는 게 장르의 정석(定石)이라는 것. 하지만 여태 내가 봐왔던 코미디 영화들 대다수는 후반부에 이르러서 늘 장르가 돌변하곤 했다. 그러니까 초ㆍ중반까지 관객들을 웃기다가 후반부에 와서는 갑자기 진지모드로 바뀌어 억지감동이든 뭐든 눈물로 마무리를 짓는다. 시쳇말로 웃고 울린다. 이러한 특성은 한국영화에서 특히 심하다. 우리 고유의 정서가 한(恨)이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면 무게를 중시하는 오랜 유교문화의 영향일까.

사실 그렇다. 웃음은 진지한 감동보다는 무게감이 떨어진다. 존재 자체가 가볍다. 그래서 진지한 감동에 비해 더 쉽게 잊혀지고 신선도도 훨씬 낮다. 감동은 다시보기를 통해 재탕을 해도 그 신선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가 많지만 웃음은 재탕이 되면 보통은 처음처럼 똑같이 웃기가 힘들다. 냉장 보관을 할 수도 없고 참.

어찌됐든 후반부로 갈수록 매가리가 없어지는 웃음기로 인해 코미디 영화는 늘 장르적으로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법도 한 게 끝까지 웃기질 못하고 중반부터는 진지모드로 변하다보니 장르가 '코미디'라도 그 옆에는 늘 컴마 찍고 '드라마'라는 장르 표기가 하나 더 붙곤 했었다. 제대로 된 코미디 영화를 만나기란 이리 어렵다. 특히 한(恨) 많은 한국영화에서는.

그랬던 탓에 우리 영화판에 최근 신성처럼 등장한 이병헌 감독은 조금 독특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는 영화를 통해 시종일관 관객들을 웃기려 든다. 그가 충무로에서 처음으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은 2008년 말 개봉해 대박을 친 <과속스캔들>이었다. 그 작품에서 그는 각색을 맡아 처음으로 관객들을 웃겨줬다. 이후 2011년 역시나 큰 웃음으로 대박을 쳤던 <써니>에서도 그는 각색을 맡았고, 2015년 자신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스물>로 충무로의 신성 감독으로 급부상하게 됐다. 그리고 올해 <극한직업>으로 불과 보름여 만에 천만 관객을 넘기며 소위 '천만 감독'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는 생긴 것도 잘 생겼다. 재섭게.

아무튼 지금까지 이병헌 감독의 행보는 오로지 코미디 영화로 일관돼 왔다. 이번에 천만을 넘긴 <극한직업>은 그 정점에 선 작품으로 극중 고 반장(류승룡)의 대사를 빌리자면 지금까지 이런 코미디 영화는 없었다. 그게 왜 그런가 하니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극한직업>은 끝까지 웃긴다. 아니, 오히려 끝부분으로 갈수록 더 웃긴다. 그러니까 웃음이 조금씩 상승곡선을 그리다 끝부분에서 최고치를 찍는다는 말이다. 당연지사 관객 입장에서는 극장을 나갈 때 날아갈 듯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을 터. 게다가 후반부 주요 캐릭터들의 반전매력은 시원한 액션과 함께 관객들에게 깊은 쾌감을 선사한다. 괜히 천만 영화가 된 게 아니다.

사실 그 동안의 한국 코미디 영화들이 중반 이후 급격하게 진지모드로 갈아타게 된 건 관객들을 끝까지 웃긴다는 게 힘든 작업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남을 웃긴다는 게 원래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이병헌 감독의 타고난 개그 본능이 부럽긴 하지만 이 타이밍에 그가 유독 코미디 장르에 집착하는 이유는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천만도 넘겼는데. 그것에 대해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냥 편안한 방식으로 소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극한직업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소수의 금수저들을 빼면 대다수가 먹고 사는 일 자체가 힘이 들 터. 특히 허울뿐인 '사장' 소리 들으며 폐업을 놓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자영업자들은 영화를 보면서 웃기보다는 형사들이 반짝 아이디어로 만들어 대박을 친 수원왕갈비 치킨의 비결에 더 눈길이 가지 않았을까. 그렇게 우리는 지금 웃음이 귀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도 웃음에는 감독의 말처럼 관계를 편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또 행복의 표정과도 가장 가깝다. 행복의 표정이 찡그리거나 화를 내지는 않을 터. 해서 이병헌 감독이 코미디 영화에 집착하는 건 어쩌면 웃음을 통해 일그러진 표정의 세상을 조금이라도 달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닐까. 2019년 1월23일 개봉. 러닝타임 1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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