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화학공장
완벽한 화학공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1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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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공업화가 막 시작되던 1970년대 초등학교 미술시간 기억을 더듬어 본다. 크레파스도 흔하지 않았고, 있어도 양초에 색소를 넣어 색깔만 흉내 낸 파라핀 크레파스로 공업입국을 원하는 그림을 곧잘 그렸다. 공장을 그리면 톱니모양의 건물에 높은 굴뚝, 그리고 굴뚝 끝에서 검은 연기가 나는 그림이다. 지금 이런 공장이 있다면 배출가스 검사를 받아 환경규제 여부를 물어야 하지만 그 이전에 민원 때문에 강제로 공장 문을 먼저 닫아야할지도 모를 일이다.

남자는 화장실에서 작은 일을 볼 때 손을 씻고 볼일을 보느냐 볼일을 보고 손을 씻느냐에 따라 직업군을 약간은 구분할 수 있다. 물론 볼일을 보기 전과 후에 두 번 손을 씻을 수도 있지만 필자의 관찰로는 이런 분류의 남자는 별로 만나지 못했다.

손을 씻는 것은 오염물이나 세균의 감염을 최대한 막기 위한 방법이다.

공장에서 검은 연기와 악취가 나는 것은 일부러 그런 제품을 만들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반응하지 않은 이유로 부산물이 생성되는 경우가 많다.

화학반응은 100% 완벽하게 반응할 수도 있지만 90%까지만 보내고 10%는 미반응으로 남아있거나 불순물이 생성되어도 반응시간이 긴 것보다 생산성이 높으면 이익을 더 많이 남길 수 있기에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불순물의 후처리 공정을 거쳐야 하지만 이마저도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공학이기도 하다. 예전에 자주 보았던 검은 굴뚝은 반응을 잘 보내지 않았거나 후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이다. 그런 그림이 자랑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이는 경제적 이유와 잘못된 교육 탓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완벽한 화학공장이 있다면 바로 생명체이다. 물론 식물도 해당되지만 동물의 경우 더 복잡한 화학공장이다. 사람의 경우를 보자. 음식물을 섭취하면 잘게 부수어 위로 넘기면 소화액이 분비되면서 위 운동으로 골고루 반응을 하여 소장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고 대장에서 탈수를 하여 고체와 액체로 분리해 낸다. 또한 필요에 따라 트림이나 방귀의 가스 상태로 내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영양분을 혈액을 통해 필요한 온 몸의 기관으로 보내는데, 이때 필요한 산소는 폐에서 혈액과 화학적 흡착으로 생긴 신선한 혈액을 통해 동맥으로 뿜어지고, 역할을 다한 혈액은 노폐물을 소변으로 배출시킨다.

소화기와 호흡기만 해도 이러한데 신경계까지 화학반응으로 설명하고, 또한 손을 씻어도 제거하지 못한 세균이 피부나 호흡기로 통과하는 신체의 면역체계까지 설명하면 복잡하지만, 완벽한 화학공장인 것만은 틀림없다. 건강한 사람의 수명을 80세까지로 본다면 대규모 리벰핑(revamping;개조·수리)을 하지 않고 80년 동안 운전되는 화학공장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 바이오 화학장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점점 복잡해진다고 한다. 손과 발로만 해도 되었는데 고성능 컴퓨터와 심지어 AI(인공지능)를 사용해야 하고, 가족이나 마을사람들이 품앗이하던 일을 이제는 대형 기계장치가 하고, 작은 차 한 대가 말 200필의 힘을 내기도 한다. 이것을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이고 그 근본은 에너지를 낼 수 있는 물질이다.

무엇을 움직이게 하고 그 힘을 얻거나 원하는 물질을 만들기 위해 애쓰다 보면. 원하지 않는 물질이 생성될 수도 있다. 세상은 완벽을 원하지만 완벽한 것은 어느 하나도 없는 것이다. 바이오 화학장치가 별 탈 없이 80년을 운전한다 해도 과정 과정은 완벽하다고 할 수 없다. 사람이 신이 될 수 없듯이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서 사람은 포용하고 용서하고 남의 편에 서서 보아야 남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정한 상식이 남을 설득시킬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이해라는 영어단어는 ‘understand’이다. 이는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under(아래)에서 stand(서다)한다는 것이다.

완벽하다는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내가 완벽을 요구할 때 상대는 더 정밀도가 높은 잣대로 완벽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은 배려가 있고 이해가 있어서이다. 그리고 더 포용적인 용서가 있기 때문에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곳이다. 진정한 용서는 이전 것을 기억도 하지 않는 것이다.

우항수 울산테크노파크 전지소재기술센터장 /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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