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목욕탕 ① 울산탕
우리동네 목욕탕 ① 울산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1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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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하나뿐인 목욕탕 ‘성업’
지역 첫 ‘가족탕’은 후발주자도 따라
- 울산제일중학 전국 축구대회 제패에

- 병영-울산읍팀 경기 후 단체로 찾아

- 1997년 폐업… 지금은 식당 들어서



최근 울산시문화원연합회가 ‘울산지역문화연구(사진)’에서 울산의 목욕문화에 주목했다.

지역에선 첫 시도다 보니 생소하지만 옛 사람들의 삶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담았다. 이 중 일부를 발췌해 매주 월요일 총 12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편집자주-





울산사람들은 ‘울산탕’을 통해서 대중목욕탕 문화를 익혔다.

해방 직후만 해도 목욕탕이라고는 울산에 울산탕 하나뿐이다 보니 이 목욕탕은 성업을 이뤘다. 더욱이 울산탕은 울산에서는 최초로 가족탕을 둬 가족단위로 목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다 보니 이후 개업한 옥천탕과 새한탕도 가족탕을 따로 뒀다.

울산탕 손님이 얼마나 많았나 하는 것은 손님들이 너무 많이 몰려오는 바람에 ‘만원사례’의 간판을 걸고 손님을 받지 못할 때가 자주 있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울산탕은 주인이 일본인으로 일제강점기는 물론이고 해방 후에도 한 동안 여 주인이 기모노를 입고 손님을 맞이했다. 카운터는 목욕탕 입구에 있었지만 좌우를 모두 볼 수 있어 남녀입욕손님들의 입장료를 여자 혼자서 모두 받았다.

60년대가 되면 이 목욕탕은 해방 후 만주에서 울산으로와 양품 장사를 해 돈을 벌었던 최준식이 구입해 미도그릴을 함께 운영함으로 성시를 이뤘다.

울산제일중학이 전국 축구대회에서 제패를 하자 병영팀과 울산읍 팀이 울산초등학교에서 축구시합을 자주 했는데 이 때 시합이 끝나면 학생들이 이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등 단체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어릴 때부터 북정동에 살면서 이 목욕탕을 자주 이용했던 고동원(73세)씨는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가정 경제가 어려워 청소년들 중 목욕탕에서 목욕하는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면서 “당시 병영 학생들과 시내에서 축구 시합을 마치고 울산목욕탕에서 함께 목욕을 하려면 학생들 대부분이 목욕 경험이 없어 팬티를 입고 탕으로 들어오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부녀자들도 이 무렵에는 설이나 추석 등 명절이 돼야 목욕탕에서 목욕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처럼 오랜만에 목욕을 하다 보니 명절에는 평균 6~7시간 목욕을 했다”면서 “이 바람에 기력이 떨어져 실신해 목욕탕에서 실려 나가는 여인들도 있었다”고 말한다.

최씨는 울산탕을 운영하면서 재미를 보았지만 1997년 6월 문을 닫게 되는데 폐업 사유는 자진폐업으로 돼 있다. 울산탕은 폐업 후 식당으로 변해 지금은 옛 목욕탕 자리에 식당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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