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오브 뮤직’과 ‘2·8 독립선언’
‘사운드 오브 뮤직’과 ‘2·8 독립선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2.1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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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재회였다. 대학시절, 눈으로 귀로 즐겼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The So und Of Music,1965)’을 2월 9일 밤, 무심코 돌린 EBS에서 다시 만난 것. 영화 속 보석 같은 곡들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특히 ‘에델바이스(edelweiss)’는 아직도 애창곡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폰 트랩’ 해군예비역대령 부부와 그 7남매가 들려준 ‘안녕’이란 뜻의 노랫말 ‘So Long, Farewell, Auf Wiedersehen, Goodbye’는 가슴 뭉클한 감동의 극치로 간직되고 있다.

‘뮤지컬 영화의 고전’이 된 이 영화는 오스트리아가 조국인 폰 트랩 일가의 실화를 바탕으로 1956년 독일에서 크게 히트한 영화 ‘트랩 가족’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 1965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5개 부문(작품·감독·편곡·편집·녹음)의 상을 한꺼번에 휩쓸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트랩 가족’이 뮌헨에서 처음 선보였을 때는 폰 트랩 일가가 나치의 손아귀에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는 장면이 모조리 잘리는 곡절을 겪어야 했다.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나치독일의 징병 요구를 몸으로 거부한 폰 트랩은 진정한 애국자였고, 그가 부른 노래 ‘에델바이스’는 조국애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하루 전인 2월 8일 오전, 일본 도쿄의 재일본한국YMCA(이하 ‘도쿄YMCA’)와 종로구 서울YMCA에서는 같은 성격의 기념행사가 동시에 열렸다. ‘2·8 독립선언 100주년’ 기념행사가 바로 그것. 특히 도쿄 행사는 2·8독립선언의 횃불이 식민종주국의 심장부 도쿄에서 올랐다는 점에서 관심이 표적이 됐다. 이를 입증하듯 이 자리에는 이청길 도쿄YMCA 이사장, 이수훈 주일대사,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등 국내 저명인사 다수가 참석했다. 광복회원, 애국지사 유가족, 유학생 대표 등 참석자 300여명은 “대한독립 만세!”를 세 번씩 소리 높여 외쳤다.

‘2·8 독립선언’은 어떤 운동일까? 3·1운동은 잘 아는 우리 국민 대부분에게 ‘2·8 독립선언’은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지 모른다. ‘2·8 독립선언’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조선 유학생 대표들이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발표한 독립 의지의 구현이었다. 앞서 만주·러시아의 독립운동가 39명이 중국에서 발표한 ‘대한독립선언’의 뜻을 계승한 것이자 국내 3·1운동의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날 대통령은 SNS 글에서 “유학생들이 낭독한 조선청년독립선언서는 우리 독립운동의 화톳불을 밝히는 불쏘시개가 됐다”며 “최팔용·윤창석·김도연·이종근·이광수·송계백·김철수·최근우·백관수·김상덕·서춘 등 도쿄 조선청년독립단 열한 분의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선언서는 ‘모든 조선청년독립단은 우리 2천만 조선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얻은 세계 만국 앞에 독립을 이루기를 선언하노라’로 시작된다. 조선 유학생 대표들은 ‘우리 겨레의 정당한 요구’란 말과 함께 ‘영원한 혈전(血戰)’이란 표현도 당당하게 구사했다.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위에 새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다짐과 ‘문화와 정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우리 겨레는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문화에 공헌하겠다’는 각오도 아울러 밝혔다.

다음날인 9일 오노 야스테루(小野容照) 규슈대 교수는 도쿄YMCA에서 열린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2·8 독립선언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1919년 베이징대 학생들이 일으킨 5·4운동의 계기 중 하나가 됐으며, 대만인들이 자치운동을 펼치는 데도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3·1운동’, ‘임시정부 수립’과 함께 3대 독립운동의 하나로 꼽히는 2·8 독립선언. 앞으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에델바이스’를 즐겨 노래하는 대신 ‘2·8독립선언’의 구절을 한 마디라도 더 외우는 데 시간을 쪼개겠다는 다짐을 100주년에 즈음해서 해 본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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