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고공농성 해제가 남긴 것
울산 고공농성 해제가 남긴 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9.01.2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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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2일 시작돼 한 달을 넘긴 현대미포조선 고공 농성사건이 설 연후 직전인 23일 해결됐다고 한다. ‘울산 판’ 서울 용산철거민 사건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우려했던 만큼 이번 사태해결은 지역민, 노사 모두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경찰이 농성자 2명의 악화된 건강을 고려해 체포영장을 집행하지 않고 건강회복 뒤 소환 조사할 예정이라고 하니 더욱 다행스럽다. 특히 현대미포조선 노사대표와 민주노총 3자가 협의해 8개항에 이르는 합의사항을 이끌어 낸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울산 고공농성사태가 서울 용산 철거민사건과 내용 결과면에서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일의 전개 과정과 투쟁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치 않을 수 없다. 외부세력이 가세하면서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고 외곬수로 흘러가게 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당초 현대미포조선 소각장 ‘굴뚝 농성’은 용인기업 근로자 해고를 둘러싼 사내 노사문제였다. 민주노총, 정당, 시민단체가 개입하면서 장기화되고 전국적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에는 일부 정당 관계자들이 단식농성에 참여해 정치적인 투쟁으로 변질돼기도 했다. 서울 용산 재개발구역 철거민 사상사고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사건 배후에 ‘전국 철거민연합’이란 조직이 있었다고 한다. 전문성을 가진 외부 세력이 개입하면서 ‘용산농성’은 조직, 과격화됐다는 것이다. 울산 고공 농성에 전문‘꾼’들이 개입치 않고 이 정도 선에서 사태가 해결된 것은 천만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굴뚝 농성장’ 바로 밑에서 동조 단식투쟁을 벌였던 단체, 조직의 자세는 옳지 않았다. 그 자체가 고공 농성자들로 하여금 돌출 행동을 취하도록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굴뚝 위에서 농성중인 근로자 2명이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으면 어쩔 뻔 했는가. 농성자들이 ‘혹한 고공농성’을 통해 사측을 압박, 비정상적 요구를 관철시킨 것도 문제다. 극한 투쟁만하면 잘못된 요구,주장도 관철될 수 있다는 잘못된 시위문화 사례를 다시 남겼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고공농성 사태해결은 외면적 화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완(未完)의 장(章)으로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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