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음식(歲時飮食)으로 기억될 설 명절
세시음식(歲時飮食)으로 기억될 설 명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1.31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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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의 달력에는 여느 공휴일보다 더 아름다운 붉은색으로 채색된 설날이 있다. 그 동안 못 만났던 부모, 자녀, 손주, 조부모를 보게 되는 기쁨, 입학을 앞둔 학생의 설렘, 아니면 연휴여서 학교에 안 가도 출근을 안 해도 되는 행복감으로 가득 찬 즐거운 날이 되기를 저마다 기대한다.

정월 초하루의 또 다른 이름인 설, 세수(歲首), 연수(年首), 원단(元旦), 원일(元日)은 모두 한 해의 첫 날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설에 차리는 설음식 ‘세찬(歲饌)’은 떡국, 만두, 고기류, 나물, 곶감, 식혜, 수정과나 술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떡국은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해서 ‘첨세병(添歲餠)’이라 했고, 설날에 마시는 술 ‘세주(歲酒)’는 <세주불온 우영춘지의(歲酒不溫 寓迎春之意)>라 해서 데우지 않고 차갑게 마시면서 새해 새봄맞이를 준비했다.

우리나라의 명절은 음식과 함께 계승되어 왔다. 설 하면 떡국, 추석 하면 송편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듯 명절을 상징하는 세시음식(歲時飮食)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명절은 매해 일정하게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놀이나 의식을 행하는 날로 정의해도 무방할 정도로 상당부분이 음식 행사로 이루어져 있다.

매년 명절이 다가오면 텔레비전에서는 명절음식에 관한 갖가지 프로그램들이 방영된다. 명절음식의 종류, 만드는 법, 영양적 가치와 더불어 명절음식 속의 탄수화물 및 지방으로 인한 고(高)칼로리를 염려하는 내용도 자주 다루어진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무병장수를 기원하면서 먹던 설 명절 세시음식은 떡국과 온갖 떡을 통하여 탄수화물을, 고기류를 통하여 단백질과 지방을, 각종 과실과 나물을 통하여 비타민을 섭취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세시음식에는 겨우내 부족했던 영양분을 보충하고 새로운 한 해를 건강하게 시작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었고, 영양가가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음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물론 산해진미로 가득한 설음식을 매일 먹는다면 소화불량이나 비만과 같은 여러 가지 걱정거리가 뒤따를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떡국, 고기, 전과 갖가지 나물로 이루어진 설 명절 음식에는 필요한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는데다 인공적인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기에 오롯이 자연을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지나치게 많이 먹지만 않는다면 이보다 더 좋은 보약(補藥)도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설 명절에 먹는 음식은 새로운 한 해를 건강하게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보약인 셈이다. 여하간 설 명절의 고칼로리 음식이 영양적 우수성, 가족 간의 정, 새해를 맞이하는 의미를 퇴색시키지는 못하지 싶다.

음식은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필자에게도 설에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설이 되면 고기만두를 싫어하던 외손녀 때문에 외할머니께서 항상 별도로 만들어 두시던 김치만두, 자주 못 보는 손녀를 기다리시며 할아버지께서 가을에 딴 감을 처마 밑에 매달아 말려주시던 곶감이 생각난다.

유명한 맛집의 김치만두, 명인의 곶감도 추억이라는 조미료가 없으니 외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그것만 하지는 할 것이다. 이 음식을 먹을 때면 지금은 계시지 않는 외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왈칵 밀려오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의 명절 풍속은 격세지감을 느끼게 할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가족과 친지가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먹고 전통놀이를 즐기며 지내기보다 일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명절음식 장만에 따른 노동과 명절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고 여행을 떠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평상시라면 엄두도 못 냈을 여행을 통해 활력을 되찾고 추억을 만들어 오는 것도 나름의 의미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명절음식을 맛보지 못하게 되니 자연스레 음식을 통해 떠올릴 수 있는 명절에 대한 추억을 쌓을 수가 없을 터이니 세시음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면 왠지 안타까움이 앞선다. 이제 얼마 안 가면 명절 음식도 인터넷 검색으로만 접할 수 있는 옛것으로 전락하지나 않을까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이번 설에는 며칠 동안 칼로리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나이 들어 심심치 않게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줄 설음식을 여느 때보다 맛나게 먹어보자. 건강하게 한 살을 더 먹게 해준다는 첨세병(添歲餠)도 먹고 몸과 마음의 나이는 한 살 더 젊어지게 하자.

가공하지 않은 원초적 시작을 뜻하는 불온(不溫)의 세주(歲酒)를 맛보고, 비어 있어서 마음껏 채워갈 수 있는 그런 새해를 시작하자.

<김일낭 울산과학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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