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가족사진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가족사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1.30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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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20여 년 동안 빠짐없이 꼭 챙기는 취미생활이 있다. 매년 1월이 되면 지난 1년간의 가족사진을 앨범에 정리하는 일이다.

어려서부터 사진을 찍고 정리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는데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면서 그 정도가 더 심해진 것 같다. 우리 부부의 결혼 전 사진들은 엑기스만 뽑아 한 권의 앨범으로 정리하였고, 신혼여행 사진부터는 내가 직접 연출해가며 촬영하고 스토리를 만들어 정리하는 그런 취미생활이다.

아이가 생기면서부터는 태어날 때부터 성장해 가는 과정을 사소한 일들까지 빠짐없이 모두 사진에 담아 앨범에 정리하곤 했다. 당시만 해도 필름 카메라 시절이다 보니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었다. 우선 사진을 찍는 일부터 번거롭기 짝이 없다. 표준, 망원, 광각, 줌 렌즈를 화각에 맞춰 카메라에 갈아 끼우고 카메라 조리개와 노출시간을 상황에 맞춰 조정하며 한 컷, 한 컷씩 정성껏 찍는다. 다시 사진관에 맡겨 필름을 현상하고 작은 사이즈의 사진으로 인화하여 의도대로 잘 나온 사진들을 선별한다.

이렇게 1월부터 12월까지 차곡차곡 쌓인 가족사진은 1월 초에 사진의 중요도와 완성도에 따라 여러 사이즈로 인화한다. 그리고는 사진의 양에 맞춰 알맞은 앨범을 구입하여 시간 순으로 정리하는 게 1월의 주요 행사였다. 사진 선별에서 인화, 수동 편집까지 보통 이삼 일에서 1주일 정도 소요되는 나름 고된 작업이다. 이런 작업 끝에 완성된 앨범들은 나의 소중한 자산이 되어 서재의 주요 지점에 자리잡게 된다.

집을 방문하는 손님이 있으면 곡차 대접과 더불어 앨범 고문을 치르게 할 때가 많다. 가끔씩 가족이 다 모여 오래된 앨범을 꺼내 한장 한장씩 넘기며 가족이 공유했던 지난 추억을 소환하는 맛은 안 해 본 사람은 모른다. 지금도 서재의 여러 칸에는 수십 권의 앨범들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우리 집 재산목록 1호가 되었다.

이 취미생활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필름 카메라 시절이 끝나고 디지털 카메라로 넘어와도 계속되었다. 디지털 카메라 시대가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이 수백 장에 달하는 필름들을 일일이 디지털 스캔을 떠서 파일로 전환하여 보관한 것이다.

하드디스크에 저장한 것도 안심이 안 되어 CD에 구워 별도로 보관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나와 함께 오랜 시간 추억을 쌓았던 필름 카메라와 렌즈들은 지금도 책장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 시대로 넘어오면서 바뀐 것은 사진 양이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저장과 편집이 쉬워지면서 앨범 정리시간이 많이 줄어든 것과 빠른 기술 발달로 인해 수시로 카메라가 바뀐 정도였다.

이제는 디지털 카메라 시대를 지나 스마트폰 카메라 시대가 되었다. 스마트폰의 기능이 좋아짐에 따라 번거롭게 디지털 카메라를 들고 다닐 필요를 못 느끼게 된 것이다. 아무 때나 어느 곳에서나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한 번에 수십 장씩 사진을 찍어댄다. 굳이 전문가 모드를 사용 안 해도 예전의 필름 카메라 시절의 하이 아마추어 수준의 사진이 저절로 찍혀진다. 또한 포토샵 편집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사진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사진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해졌는데도 오히려 사진에 대한 애착은 더 줄어든 것 같다.

지금 내 폰과 컴퓨터에는 편집과 인화를 기다리는 수천 장의 사진이 저장되어 있다. 그런데 예전과 같이 이것들을 편집, 인화, 정리하고픈 욕구가 완전히 식어버렸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혹은 그동안 모델이 되어 주었던 아이들이 훌쩍 커버려 내 품을 떠나 그런 건지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예전 같이 한 컷, 한 컷마다 느껴지던 손맛이 사라진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언제 다시 나의 ‘1월의 취미생활’이 살아날 수 있을까. 올해 1월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고 있다.

<전재영 코렐테크놀로지(주) 대표이사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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