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겨웠던 전공학점 취득의 추억
힘겨웠던 전공학점 취득의 추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1.2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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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과학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된 지 벌써 7년째다. 현대중공업에 1980년도에 공채로 입사하여 전산 및 정보통신 분야에서 약 30년 정도 근무했다. 대학시절의 전공은 전기기계공학이었는데 전공과는 전혀 다른 직종에 취직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 학교는 전자공학과 전기공학의 2개 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전자공학을 선택했는데 가끔 대학시절의 전자공학 전공 교수님 생각이 난다. 전공필수 3학점의 전자공학 수업은 ‘전자공학의 기초’라는 두꺼운 전공서적으로 공부했다. 책글씨는 매우 작았고 기술수준은 상급이었다. 그 책을 배우고 치른 중간고사 및 기말고사와 관련한 특이한 기억이 남아있어 아직도 서재에 40년째 보관하고 있다.

그 과목의 학점 이수에서 “다른 과목보다 괴로웠다”고 추억되는 부분은 교수님의 시험 출제 방식이다. 분류 문제, 용어 설명, 수학 방정식을 이용한 전자회로 유도 문제 풀이 등 총 3가지인데 시험시간은 무려 5시간이었다. 긴 시험시간 탓에 평일에는 시간이 부족하여 특별히 토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시험을 봤다. 시험문제지 크기는 B4 재생용지로 시험지 5장이 기본이었다. 시험문제 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학생 각자가 적어내야 하는 답의 분량은 너무 많았다. 또한 시험범위는 항상 첫 페이지부터 배운 데까지였다. 물론 전부 단답형 혹은 주관식이었는데, 강의내용을 충분히 이해한 후 그냥 달달 외우고 답을 유도해서 풀이과정까지 상세히 적어내야만 했다.

교수님의 교육방식은 학생들이 다른 과목의 시험은 포기하더라도 전자공학의 기초과목은 절대 포기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과목에 투입되는 공부시간은 무척 많을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시험일 3주 전부터 머리를 싸매고 밤샘을 하면서 시험공부에 몰입해야 겨우 B학점 정도를 취득할 수 있을 정도였다. 시험감독은 교수님과 조교 2명이 철저하게 감시 관리하는데 3학년 중간고사 때 그 사건이 발생했다.

시험시간이 5시간이라서 1시간 지나면 화장실을 갈 수 있는데 복학생 1명이 조교한테 걸려들었다. 복학생은 수세식 화장실 머리 위쪽 물통 안쪽에 돌돌 말아둔 커닝 페이퍼를 꺼내어 화장실에서 보다가 조교에게 발각된 것이다. 이 사실은 곧바로 교수님께 보고되었다. 교수님은 시험을 치르고 있는 학생들이 다 보는 가운데 그 복학생의 답안지를 인정사정없이 구겨서 통째로 찢어 버렸다. 그리곤 큰소리로 “F학점”이라 하셨고, 이 복학생은 그 다음 해에도 교수님으로부터 학점을 부여받지 못한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그 교수님에게서 학점 취득과 시험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은 미리 인지하고 있었고 시험감독이 철저하다는 소문은 자자했었다. 어느 정도 각오하면서 공부했지만 실제로 접해본 그 당시는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기억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 마련이다. 대학 학창시절의 힘들었던 학점 취득 경험은 과거 직장생활과 현재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교육하고 취업지도 및 진로지도를 할 때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그 당시와 현재를 비교할 때 문화수준과 학생들의 사회교육 및 인지 정도가 많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공부하는 방법이나 끈기, 태도 및 학생과의 관계개선 등에는 많은 영향이 생길 수 있다.

요즈음 학생들 공부하는 방식을 보면 사고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주입식이며 단순히 시험 통과를 위한 임시방편으로 편중되어 가고 있다.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 내용은 생각의 깊이가 별로 없고 인터넷이나 책에서 복사한 내용이 짜깁기되어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학의 근본 취지에서 많이 벗어나 오로지 취업을 위한 주먹구구식의 교육 형태로 전락되는 분위기라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교육의 본질이 왜곡되는 이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오히려 학생들에 대한 기술지식의 전달보다는 지혜를 짜낼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과거 대학시절 전공 교수님의 교수법도 일부 고려해 보면서 교수님이 항상 하시던 말씀을 되새겨본다. “너희들이 나중에 사회에 진출했을 때 내 생각 틀림없이 많이 할 거다.”

김헌국 NCN 전문위원·울산과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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