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팥죽과 설날떡국
동지팥죽과 설날떡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1.27 20: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지와 설날에는 말없는 약속이나 한 듯 팥죽과 떡국을 먹는다. 언제부터 어떤 연유로 먹게 되었는지 그 근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저 설만 무성할 뿐이다. 누구나 현재까지 깊은 생각은 없이 세대의 흐름을 따라 고정관념 전승의 물줄기를 타고 그렇게 흘러왔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절기와 새해를 앞으로도 맞이할 나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한테서 동지팥죽·설날떡국에 대한 질문을 한번이라도 받게 되면 난처해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본인의 궁금증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아이들의 질문공세에는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그저 팥죽 먹었느냐, 떡국 먹었느냐는 말로 얼렁뚱땅 얼버무리고 지나갈 것인가? 아니면 한 끼 음식으로만 여겨 그저 많이 먹으라는 덕담으로 지나칠 것인가? 동지는 지났지만 음력 새해가 코앞이다. 이쯤에서 동지와 설날에 팥죽과 떡국을 먹는 이유를 재해석 해보는 것도 그다지 무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우선 동지팥죽과 설날떡국은 다른 시점, 같은 시작이라는 공통점부터 풀어나가야겠다. 요즘은 동지팥죽과 설날떡국을 어떤 의미로 먹고 있는지, 그 현상부터 살펴보자.

‘질병과 잡귀를 물리친다.’ ‘팥이 귀신을 쫓는다.’ ‘팥죽에 들어있는 새알심을 나이대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 동지에 팥죽을 먹는 주된 이유이다. 이를 종합하면, 팥의 붉은 색이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전염병을 예방하기 때문이란 말로 정리된다.

‘떡국을 먹으면서 소원을 빈다.’ ‘질병을 예방하고, 장수를 빈다.’ ‘한 해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한다.’ ‘부자가 된다.’는 것이 설날에 떡국 먹기를 권하는 어른들의 표면적 이유다. 이를 종합하면 떡국은 건강과 장수, 평안과 풍요 그리고 부자 되기를 소원하는 음식으로 정리된다.

동짓날에 팥죽을, 설날에 떡국을 먹는 이유를 대부분은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와 부자 되기를 소원하기 때문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필자 역시 지금껏 그렇게 듣고 먹어 왔다. 고정관념의 답습인 셈이다. 과연 그런 이유밖에 다른 의미는 없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재해석이 필요한 이유를 찾았다.

동지는 밤 길이가 낮 길이보다 긴 겨울의 극이라는 뜻을 지닌 말이다. 밤의 길이가 길다는 것은 어둠이 그만큼 짙다는 말이다. 설날은 새해가 시작되는 밝은 아침이다. 동지의 칠흑 같은 밤과 새해의 밝은 아침은 상반되는 의미로 다가온다. 동지와 설날은 어둠과 밝음의 상대이자 ‘어둠의 벗어남’과 ‘밝음의 더함’이란 특성을 제각기 나타낸다.

긴 어둠을 벗어나려면 빛이 필요하다. 팥죽은 팥의 검고 붉은 어둠 속에 흰 빛의 새알심을 띄워 먹음으로써 어둠에서 벗어나기를 시작한다. 떡국은 밝은 새해 아침에 떡의 흰 조각을 더함으로써 더 밝은 새해를 지향하기 시작한다. 팥죽과 떡국은 상징적인 음식이다.

밝음으로 상징되는 흰색의 새알심과 동전처럼 얇게 썬 역시 흰색의 떡이 중심재료로 등장한 것이다. 똑같이 하얀색인 팥죽의 새알심과 떡국의 떡을 지혜의 상징인 빛의 편린으로 본 것이다. 이를 조상의 지혜라 불러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이다.

동지와 설날에 팥죽과 떡국을 먹는 이유는 빛을 상징하는 흰색을 중심으로 무명에서 벗어나 지혜를 증장시키는 의식이 그 밑바닥에 깔려있음을 찾는 것이 재해석의 요지이다.

자연 현상의 하나인 어둠을 인간사에서는 무명(無明)으로 비유된다. 무명은 빛이 없는 캄캄한 상태이다. 이런 현상을 사람에게 접목시키면 어리석음이 된다. 우치(愚癡)라고도 쓰는 어리석음은 고정관념 속에 답습된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동지는 무명의 극에서 서서히 빛을 찾아가는 시작점이다. 이러한 과정을 팥죽으로 상징화시키면 팥죽은 무명을 나타내고, 그 속의 하얀 새알심은 빛의 조각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동지팥죽은 새알심이 무명을 차츰 제거하는 점수식(漸修式) 지혜식(智慧食)이며, 설날떡국은 단박에 지혜를 증장시키는 돈오식(頓悟式) 지혜식(智慧食)이다. 다 같이 특별한 음식들이다. 밤이 제일 긴 동짓날 팥죽의 본질은 ‘어둠을 제거한다’는 제야(除夜)라는 단어에 숨어있고, 새해 떡국의 본질은 밝은 초하루 아침 광명의식으로 원단(元旦)이라는 용어에 숨어 있다. 결국 보내는 의식인 동지의 마무리 행사와 맞이하는 의식인 새해의 설날 맞이 행사는 지혜로 상징되는 빛을 찾아 나가고 빛을 더하는 것으로, 둘 다 시작의 행사인 셈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동지팥죽은 모든 삿된 것을 물리치는 음식으로 벽사식(闢邪食)이 될 것이며, 설날떡국은 밝음에 밝음을 더하며, 지혜에 지혜를 보태는 지혜증장의 경사(慶事)스러운 기운을 받아들이는 음식인 진경식(進慶食)이 될 것이다. 민속의 해석에서 본질은 제쳐두고 현상으로 접근하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

동지팥죽과 설날떡국을 먹는 이유를 ‘무명을 벗어나 지혜를 증장시키는 것’으로 재해석해 보았다. 팥죽과 떡국이 지혜를 북돋아주는 일상의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