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 ‘맹점’ 악용 가능성
대기환경보전법 개정안 ‘맹점’ 악용 가능성
  • 강은정
  • 승인 2019.01.23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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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연 기준치 초과 배출해도 형사처벌 불가능대한유화 ‘불기둥’ 면소 판결

거대 불기둥이 치솟고 다량의 매연을 내뿜어 울산시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대한유화가 법적 책임을 면하게 됐다. 매연을 내뿜고 기준치를 초과하는 화학물질을 배출했지만 관련법 개정으로 형사 처벌을 피해간 것이다. 법의 맹점이 드러나면서 기업들이 이를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울산지법 형사2부(이동식 부장판사)는 A씨와 대한유화에 대한 항소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면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처벌조항 폐지는 행정법규 위반에 대해 바로 형벌을 과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이뤄진 경우에 해당한다”면서 “결국 공소사실은 그 형이 폐지된 때에 해당하므로 피고인들에게 면소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면소는 법 개정으로 형이 폐지되는 등 형사소송을 제기할 요건을 충족하지 않았을 때 내리는 것으로 사실상 기소되지 않는 것과 같다.

앞서 1심에서 울산지법 형사5단독 안재훈 판사는 공장장 A씨에게 징역 4개월을, 양벌규정에 따라 대한유화에는 법이 정하는 최고액인 벌금 1천500만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대기환경법 개정으로 면죄부를 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법이 정하는 최고액을 선고했다. 이익을 위해 환경은 뒷전인 기업에게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중형을 선고한다고 양형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또한 개정법이 시행되기 전(2017년 6월)에 일어난 행위이므로 현행법에 따라 처벌하는 것이므로 형벌조항은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이러한 우려 속에 결국 2심 재판부가 면소 판결을 내려 대한유화는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다.

대기환경보전법은 비산배출시설 시설관리 기준 위반만으로 곧바로 사업자를 형사 처벌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취지에 따라 처벌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으로 지난해 11월 28일 개정됐다.

그동안 수 십 가지 시설관리 기준 중 한 가지라도 위반하면 형사고발이 가능했다. 이 기준 중 시설관리일지 작성 등 다소 경미한 부분이 포함돼 있어 이를 두고 형사고발이라는 처분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나와 법 개정이 추진됐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논의 끝에 형사 처벌을 근거로 한 이 조항은 통째로 삭제됐다.

결국 이 조항에 포함됐던 매연배출, 기준치 초과 화학물질 배출 등에 대한 조항도 사라지면서 형사 처벌이 불가능하고, 행정처분(개선명령, 조업정지 10일 등)만 할 수 있게 됐다.

대한유화는 1심 재판에서부터 이 같은 법 개정안 내용을 근거로 “기소 불가”나 “처벌 불가” 등의 주장을 내세웠다. 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지난해 11월까지 선고를 질질 끄는 등의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법 개정안이 비산먼지 배출이 잦은 기업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매연 배출 기준 초과에 대해서는 행정처분 외에 이제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 또 미세먼지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고, 정부가 미세먼지 줄이기 방안을 내놓는 등의 정책과도 엇박자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시민 김모씨는 “기업은 비용 절감 차원에서 매연과 각종 화학물질을 단속망을 피해 공기 중에 내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 법 조항까지 사라졌으니 만연해질 게 뻔하다”며 “미세먼지로 시민들은 숨쉬기조차 힘든데 법은 거꾸로 가고 있다. 기업 편에 서서 법을 개정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오자 울산지검은 이날 상고했다. 검찰은 “법 개정 전에 일어난 행위는 당연히 개정법 이전의 법을 적용해야 한다”며 상고 이유를 밝혔다.

한편 대한유화는 2017년 6월 굴뚝 시설인 플레어스택에서 총 8차례에 걸쳐 기준치를 초과하는 매연을 발생시켜 형사 고발됐다. 대한유화는 같은 해 9월에도 매연을 내뿜어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발된 상태다.

강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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