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시(近視)와 노안(老眼), 그리고 나의 선택
근시(近視)와 노안(老眼), 그리고 나의 선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1.23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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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t have your cake and eat it too.’라는 경구(警句)를 독자들이 접한 적이 있다면,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맛있는 것을 먹어버리는 것과 그것을 먹지 않고 소유하는 것, 그 둘을 동시에 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텐데. 먹게 되면 소유할 수 없는 것이고, 소유를 한다면 그 맛을 볼 수가 없으니 상충하는 욕망을 동시에 둘 다 충족시킬 수는 없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어느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선택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미래비전위원회에서 교육 문제를 고민하는 최병문 선생의 경구 해석은 탁월하다. 동사의 순서를 바꾼 ‘You can’t eat your cake and have it too.’는 ‘과자를 먹기도 하고 동시에 가지고 있기도 할 수는 없다’는 의미로, 원래의 경구는 ‘과자는 먹으면 없어진다.’는 해석. “과자를 소유하는 궁극적 목적이 먹는 것이라 할지라도, 먹지 않고 소유만 하더라도 그 자체로 흐뭇할 경우에는 굳이 먹는 선택을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과자를 먹어 몸의 피와 살로 남아있거나 에너지로 활용이 된다는 측면에 집중을 해보면, 과자는 먹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몸과 하나가 되는 것이므로 내 손안에 들어있는 과자가 없어지더라도 서운해 하지 말라. 과자는 먹음으로써 비로소 내 것이 된다.”라고 말하며 건네준 문장. ‘You can eat your cake and have it too.’는 양자 선택의 결과가 궁극(窮極)의 상태로 됨을 의미하지 않을까 한다.

필자처럼 안경을 쓰는 사람에겐 고민이 있다. 외모까지 돋보이게 하는 안경이면 더할 나위 없지만, 안경을 쓰고도 보고자 하는 것들이 잘 보이지 않는 고민. 가까이 있는 글씨와 사물들만 보이고 먼 곳에 있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근시(近視)의 필자에게 노안(老顔)이 아닌 노안(老眼)이 찾아왔다. 수정체의 초점 조절능력이 떨어져서 가까운 곳을 잘 못 보는 노안. 게다가 근시 시력도 나빠져서 현재의 안경 도수로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대통령 주치의를 한 적이 있다는 안과 원장의 진료를 받아보니 “멀리 있는 글자나 사물을 잘 보려고 근시 교정 안경의 도수를 올린다면, 가까운 글씨를 볼 때 어지럼증을 느낄 수 있으니 그때는 근시 도수가 낮은 예전 안경을 돋보기처럼 쓰라”고 말한다.

멀리 있는 글자를 잘 보려고 안경을 조절하면 가까이에 있는 글자가 안 보이게 되고, 가까운 글자를 어지럼 없이 잘 보려면 멀리 있는 글자를 흐릿하게 봐야 한다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작년 봄에는 그런 대로 버틸 수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바꿔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기존 안경 렌즈의 표면에 스크래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경집에 고이 모셔 놓았던, 이전에 착용하던 안경을 찾아내 근거리 작업에 사용하기로 하였다. 한두 가지의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목적과 상황에 맞추어 번갈아 사용하는 습관을 들이며 그 경구의 의미를 체감하고 있다.

논어의 위정 편에 ‘五十而知天命(오십이지천명)’이란 말이 나온다. ‘나이 쉰에 천명(天命)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천명’이란 우주만물을 지배하는 하늘의 명령 또는 원리를 말한다. 공자(孔子)께서는 쉰의 나이에 우주만물의 원리를 깨우쳤다는데, 후손인 필자는 쉰의 나이에 ‘You can’t have your cake and eat it too.’를 체감하고 있으니 몹시도 부끄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본다. 여태껏 가까운 것만 잘 보이는 눈으로 먼 것을 잘 보기 위하여 근시 안경을 쓰고 살았다. 근시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먼 것을 많이 보고 멀리 있을 것을 생각해서 준비하고 실천하고 살아야 했었다. 그런데 자꾸만 가까이 있는 것을 많이 보고 가까이 있을 것을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긴 탓에, 근시 증상도 노안도 빨리 오게 된 것은 아닐까. 아니면 하늘이 근시안적인 태도를 바꾸라고 노안(老眼)이라는 선물을 준 것은 아닐까. 가까이 있는 것들과 사람들의 허물은 자세히 보려 말고, 멀리 있을 미래를 밝게 보기 시작하라는 뜻이라 진정 믿고 싶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우리 울산에 유래 없던 경제 침체의 징조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다. 다양한 관점과 입장에서 문제점을 분석하고 거기에 알맞은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같은 실수나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여러 오답 노트들을 공유(共有)하는 지혜를 모아야겠다. 근시안적인 해결책도 필요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멀리 바라보는 노안의 혜안(慧眼)도 필요한 시점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불철주야로 행정을 이끌고 나가는 분들의 애쓰심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면서 ‘인무원려(人無遠慮) 필유근우(必有近憂)’라는 공자 말씀도 전한다. “사람이 원대한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눈앞의 근심에 휩싸이게 된다.”

<공영민 울산대 산업대학원 부원장 한국재료학회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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