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 증기를 보고 떠오른 감회
밥솥 증기를 보고 떠오른 감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1.2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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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등산 가면서 배낭 속에 코펠 세트를 챙기지 않아도 되지만 과거엔 등산객 배낭에는 코펠이 필수품이었다. 한 서너 시간 등반하고 나면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배가 많이 고파진다. 그럴 때면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을 찾아 넓적한 바위 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밥을 짓기 시작한다. 한참 후 뚜껑을 열고 밥을 먹으려고 하면 쌀이 설익어서 밥이 푹 퍼지지 않고 고두밥이 되어 있는 것을 한두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물은 집 부엌에서는 섭씨 100도에 끓지만 산에서는 이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끓는다. 물은 대기압에서는 포화온도가 100도지만 높이가 높을수록 압력이 낮아져 물의 포화온도도 변한다. 즉 대기압에서는 물이 100도에서 끓지만 산에서는 기압이 낮아지면서 100도 이하에서 끓게 된다. 그만큼 솥 안에 있는 쌀이 열을 덜 받게 되고 덜 퍼지면서 결국 설익은 고두밥이 되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포화온도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가마솥에 물을 붓고 불을 때면 물의 온도가 차츰 올라가기 시작하고 드디어 100도가 되면 물은 끓기 시작하고 물 표면에서는 증기(김)가 나오기 시작한다. 증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불을 계속 때도 물의 온도는 100도 이상 올라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계속 때는 불의 열은 어디로 가버릴까. 결국 물의 온도는 계속 100도가 유지되고 물 표면에는 김이 계속 증발되면서 솥 안 물의 양은 점점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즉 물이 100도에서 끓게 되면 그 후 불의 열은 어디로 가버리는 것이 아니라 물을 증발시키는 데 소모되는 것이다.

당연히 솥 안 물의 온도도 100도고 증발하는 증기의 온도도 100도다. 이때의 물을 해당 압력의 포화수라 하고 이때의 증기를 포화증기라 한다. 이 포화증기를 과열기에 넣어 다시 가열하면 그때 증기 온도는 200도나 300도로 상승하는데 이 증기를 과열증기라 한다. 이 과열증기로 터빈을 돌리고 최종적으로 발전기를 가동하여 전기를 얻게 된다. 그런데 똑같은 100도인데도 펄펄 끓는 물에 손을 넣었을 때 입는 화상보다 솥에서 새어나오는 김에 닿았을 때 입는 화상이 훨씬 더 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열역학적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100도의 물은 100칼로리의 열량을 가지고 있고 100도의 증기는 639칼로리의 열량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100도이 물이 들어있는 솥을 계속 가열해도 물의 온도는 상승하지 않고 그 열이 김을 만드는 데 소모되어 물 표면에서 증기가 발생한다. 이때 소모되는 열량이 539칼로리이고 이것이 물의 증발잠열이다. 그러므로 증발하는 증기의 열량은 100도의 물이 갖고 있는 열량 100칼로리와 증발잠열 539칼로리를 합하여 639칼로리가 되므로 100도의 물보다 더 심한 화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포화수를 가열하여 온도변화 없이 상변화에 쓰이는 열을 잠열이라 하고 이와 반대로 상변화 없이 온도상승에만 쓰이는 열을 현열이라고 한다.

오늘 아침 밥솥에서 새어나오는 김을 보며 문득 과거에 등산 가서 산 위에서 설익은 코펠 밥을 먹던 기억이 떠올라 그동안의 인생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똑같은 물질인 물과 증기의 온도는 똑같은 100도이지만 각각 가지고 있는 열량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젊었을 때는 물불을 안 가리고 엄청난 에너지로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인생에는 때때로 쉼표가 필요하다. 좋은 글을 봐도 마침표 이전에 쉼표를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그 뜻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요즘 사회는 너무 많은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등바등 살 필요가 없다. ‘다름과 틀림’을 혼돈하지 마라. 평생을 살아오면서 느낀 삶과 인생을 시 한수로 에둘러 표현해본다. “한평생 산다는 게 이다지도 어려운가. 배고프면 밥 한 술, 목마르면 물 한 모금, 가다가 숨 가쁘면 한 쉼 쉬면 되는 것을. 날이면 날마다 그놈의 욕심 앞에 몸싸움 입씨름 하다 세월이란 장사 앞에 몸도 늙고 마음도 가난해졌네. 끝내는 한 움큼 재가 되어 한강물에 흩어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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