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칼럼]대한(大寒)의 큰고니 가족
[김성수칼럼]대한(大寒)의 큰고니 가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1.20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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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20일은 24절기 중 마지막이자 1년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이었다. 소한(小寒)과 대한은 한자에서도 짐작이 가듯 맹추위의 대명사로 불린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거나 ‘소한·대한 다 지나면 얼어 죽을 내 아들놈 없다’는 속담이 전해내려 올 만큼 추위는 동서고금을 안 가리는 세인의 관심사였다.

특히 겨울철에 변변한 난방시설이 없었던 옛 서민들의 생활에서 대한추위는 목숨을 담보할 만큼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이는 ‘큰 추위’라는 의미의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맹추위를 가리켜 어떤 이는 ‘겨울이 깊을수록 봄은 멀지 않으리’라는 말로, 또 어떤 이는 ‘벌써 쑥이 쑥 나왔네’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을지 모른다.

지난달 31일, 어미 한 마리와 새끼 다섯 마리로 이루어진 큰고니 가족 여섯 마리가 태화강을 찾았다. 어미와 새끼의 구별은 쉽다. 새하얀 깃털, 목과 부리 쪽의 노란색의 짙은 정도를 따지면 된다. 성조일수록 노란색이 선명하다.

큰고니 가족은 대개 부부 한 쌍과 새끼들로 구성된다. 하지만 울산을 찾은 큰고니 가족은 안타깝게도 어미와 새끼들만 있어 필시 애비를 잃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도 현재까지는 동가식서가숙 하면서도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어 무척 다행이다.

잠자리와 먹이터를 오가면서 태화강에 머무는 것이 큰고니 가족의 일상이다. 낮에는 낙안소에서 먹이를 찾고 휴식을 취하며, 밤에는 구 삼호교 아래 삼호대숲 앞 태화강을 보금자리로 삼는다. 현재까지 먹이활동 장소는 일정했지만 잠자리는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처음 2∼3일은 오산대교 부근에서 잠을 청했으나 그 후로는 현재의 잠자리를 이용하고 있다.

울산을 찾은 큰고니 가족이 이처럼 오랜 기간을 울산에서 머물고 있는 것은 매우 드문 현상이다. 필자는 이렇게 귀한 인연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새벽 찬 공기도 마다하지 않고 큰고니 가족과의 만남을 ‘소확행’으로 만끽하고 있다.

고니는 기러기류 오리과의 대형 물새이다. 우리나라는 겨울철새인 고니(천연기념물 제201-1호)와 고니보다 몸집이 큰 ‘큰고니(천연기념물 제201-2호)’ 그리고 흑고니(천연기념물 제201-3호)를 1968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서 보호하고 있다. 고니와 백조는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새이다. 고니는 한자로 ‘곡(鵠)’, 백조는 한자로 백조(白鳥)로 적는다. 고니는 ‘곡곡곡’ 하는 울음소리를 따서 지은 이름이고, 백조는 온몸을 감싼 하얀 깃털을 보고 지은 이름이다.

고니는 별자리에도 등장하는 새이다. 직녀성의 동쪽으로 밝은 별들이 이어진 것이 고니자리(Cygnus-Cyg)이다. 고니자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 고니의 꼬리에 해당하는 별이고 그 반대쪽이 고니의 머리에 해당하는 별이다. 한여름 밤에 뚜렷하게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는 고니자리에 대한 이야기도 전한다.

고니는 ‘새섬매자기’ 어린 줄기의 싹을 좋아한다. 새섬매자기의 덩이줄기는 녹말이 풍부한 고니의 겨울철 보양식이다. 긴 목을 물속깊이 처박고 곤두박질치는 모양새는 새싹을 먹기 위한 행동양태다. 많은 개체의 고니가 매년 낙동강 하구를 찾는 것은 그곳이 새섬매자기 군락지이기 때문이다. 굴화 징검다리 부근 낙안소에서 고니 가족을 발견하고 ‘큰백로’라고 알려준 지인이 고니에 대한 궁금증을 물었다.

겨울이면 우리나라를 찾는 이유는 무언가? 그것은 서식지가 너무 춥고 얼음이 얼어 먹이를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화강을 왜 찾는가? 물이 있고 얼지 않기 때문이다. 낙안소 지역은 왜 찾는가? 먹이와 은신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에는 고니의 먹이인 부들 군락지와 몸을 숨길 수 있는 하중도(河中島)가 있다. 요컨대, 고니는 물과 먹이 그리고 은신처가 겸비된 환경을 찾는 것이다. 일찍이 “생산성이 지속적이지 못하면 마음도 변할 수 있다(無恒産無恒心)”던 맹자의 말씀을 큰고니 가족이 울산 월동을 통해 입증해주는 셈이다.

고니는 중국, 몽골, 러시아 등 북부지역 습지에서 서식하면서 번식하고, 겨울철이면 우리나라를 찾는 상서로운 새이다. 큰고니 가족도 대한이 지났으니 머잖아 소리 없이 떠날 것이다. 아울러 서서히 북상하는 봄기운을 맞아 입춘첩(立春帖)을 입에 물고 아라사(俄?斯=러시아) 아무르강 습지로 날아갈 것이다.

긴 목을 앞으로 곧바로 뻗어 수면을 박차고 힘차게 나는 큰고니 가족의 모습은 사진 작품으로도 압권이다. 그런 사진을 볼 때마다 큰고니 가족의 지친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큰고니의 비상에는 국제선 대형비행기가 이륙하는 만큼의 에너지가 소모된다고 한다. 그 압권의 장면을 사진 찍기 위해 큰고니 가족을 힘들게 하는 행위도 간간이 목격돼 안타까울 때가 있다. 철새와의 공존에는 무관심이 최대의 관심이다. 새섬마재기 군락지를 조성하고 기다리면 그들은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월동기간에는 큰고니 가족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 울산학춤보존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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