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1.16 21: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입대 전 친구들과 양산 통도사를 갔는데 대웅전 어느 기둥에서 ‘대성원래무집착(大聖元來無執着)’이란 글귀를 보고 좋은 의미라 생각하고 지금껏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대성들에게는 여러 의미가 함축된 글귀인지 몰라도 그 당시엔 ‘오로지 욕심을 버리고 살라’는 단순한 의미로 받아들였다. 살아오면서 고비마다 무집착을 실천하려고 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그래도 평생 내 생활의 모토로 삼고 그렇게 행동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슬기로움은 집착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비운다는 것은 나이가 지긋이 들어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보면 힘이 없을 때 저절로 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비움이 쉽지 않다는 걸 누구나 경험하여 알고 있다. 그럴 때마다 조병화 시인의 ‘의자’라는 시구(詩句) 한 구절을 되새겨본다.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 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힘이 남을 때까지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최근의 어려운 경제상황이나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우리 현실을 볼 때 선배 세대들은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자식이나 손자들이 먹고살기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어렵다고 느낀다.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현상은 심화되고 혼밥과 혼술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4~50대 중년층의 고독사가 세계 최고라고 하니 가슴이 짠하다.

가진 자가 베풀지 않으면 험난한 세상을 뚫고 살아가기 쉽지 않은 세상이다. 물론 노력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열심히 사는 젊은이도 많다. 혈혈단신으로 자수성가한 기성세대가 많이 있지만 세상은 살아가기가 결코 녹록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통째로 모든 것을 그냥 주라는 의미는 아니고 욕심을 버리고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하는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역에 나오는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이 썩 어울리는 듯하다. 씨 과실은 남겨야 된다는 의미다. 그 안엔 욕심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나눠준다는 뜻이 들어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젊은 사람보다 일을 못한다는 것은 아니고 나이가 들었다고 젊은 사람보다 건강하지 못한 것은 아닐지라도, 때가 되면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물려주는 것도 마음을 비울 때나 가능하다. 그래서 정년까지 근무하지 않고 조금 일찍 은퇴하는 명예퇴직이라는 제도가 있지 않은가. 현역시절에 봄가을로 중앙부처 축구동호인 대회에 참가했는데 주전 경쟁이 치열했다. 한 팀이 워낙 강팀이라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되어 우승 한번 하는 것이 지상최대의 목표였다.

하지만 “선배들 나이가 40대라 이제 주전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후배들의 원성에 못 이겨 우리또래는 ‘우승 한번’이라는 꿈을 포기하고 주전 자리를 후배들에게 양보했다. 그 후배들은 결국 3연패의 큰 성과를 냈고 50줄에 들어선 금년에도 주전으로 왕성히 활동한다. 하지만 이젠 선배들의 아리따운 양보를 거울삼아 다음 대회부터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출전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타 지역보다 울산경제가 많이 어렵다. 육아, 미투 등으로 직장 내 회식이나 동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 건 어쩔 수 없지만, 한적한 식당가를 쳐다보면 마음이 아프다. 4년여 남은 공직생활을 정리하고 울산에서 회사를 운영한 지 2년차에 접어든다. 마음을 비우니 외롭고 그리움에 집착한다. 외로움은 누군가가 채워줄 수 있지만 그리움은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울산에서 젊은이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큰 그림을 완성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일은 혼자 힘으론 어려워 보인다. 선배들의 슬기로운 비움을 그리워하는 이 또한 집착이 아닌지 오늘도 그 기로에서 시간을 보낸다.

<김영균 관세법인 대원 대표관세사 前 울산세관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