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금’에 눈 먼 어촌마을… 주민 130명 무더기 입건
‘보상금’에 눈 먼 어촌마을… 주민 130명 무더기 입건
  • 성봉석
  • 승인 2019.01.1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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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업실적 허위 작성으로 피해보상금 21억원 챙겨
허위 조업실적 피해보상금 21억원을 부당 수령한 ‘가짜해녀’ 등 130여명이 울산해양경찰에 검거된 가운데 15일 울산해양경찰서 중회의실에서 김광진 울산해양경찰 수사과장이 ‘가짜해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일지 기자
허위 조업실적 피해보상금 21억원을 부당 수령한 ‘가짜해녀’ 등 130여명이 울산해양경찰에 검거된 가운데 15일 울산해양경찰서 중회의실에서 김광진 울산해양경찰 수사과장이 ‘가짜해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윤일지 기자

 

조업 실적을 허위로 꾸며 해상공사 피해보상금 21억원을 챙긴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일대 마을주민들이 울산해경에 검거됐다.

15일 울산해양경찰서는 울주군 서생면 일대 마을 2곳을 대상으로 어촌계장 A씨와 전 한수원 직원 등 3명을 특정경제가중처벌법(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조업 실적을 허위로 꾸며 나잠어업 피해보상금 21억원을 부당 수령한 가짜해녀 등 마을주민 130명을 사기와 사기 미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PC방 사장~말기암 환자까지, 등록 해녀 중 80%가 ‘가짜’

앞서 울산해경은 지난해 8월 ‘가짜해녀’들이 다수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소규모 어촌마을임에도 나잠어업 신고자가 130여명에 달하는 기형적인 구조에 착안, 4개월에 걸쳐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울주군에 등록된 나잠어업자는 480여명으로, 해녀로 유명한 제주도에도 전체 나잠어업(해녀)신고자는 40여명에 불과하다.

주거지 탐문, 물질 현장 확인, 장애인 등록여부 등 수사를 벌인 결과 등록된 해녀들 중 약 80%(107명)가 허위로 해녀 등록한 이른바 ‘가짜해녀’인 것으로 밝혀졌다. 가짜해녀들은 PC방 사장, 체육관 관장, 택시기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경비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이가 많고 거동이 불가능한 사람이나 심지어 말기암 환자도 포함됐다.

특히 전체 가짜해녀의 절반에 가까운 51명이 남자인 것으로 확인됐으며, 마을 주민들은 본인뿐 아니라 친인척까지 가짜해녀로 등록했다. 이러한 가짜해녀는 2016년 서생면 원전공사 과정에서 기존 등록된 해녀들이 보상금을 받은 뒤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일부는 위장전입을 하기도 했다.

◇신고만 하면 되는 허술한 지급 절차에 눈 먼 세금 ‘줄줄’

가짜해녀들의 이 같은 사기 행각이 가능했던 것은 허술한 지급 절차에 있다.

나잠어업 피해보상금은 어업피해 조사기관에서 나잠어업 신고자들을 대상으로 조업실적, 실제 어업종사 여부를 확인해 보상등급 결정 후 어업피해조사 최종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감정평가기관에서 보상금액 산정 후 개인별 지급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수산업법에 따르면 신고서를 접수한 지자체는 ‘증명서를 발급하여야 한다’고 규정돼있어 해당 지자체에 나잠어업 신고만 하면 누구나 나잠어업자가 되기에 감시가 허술한 실정이다.

허술한 용역 과정 역시 한몫했다.

보상금 지급 과정에서 어업피해조사기관은 설문조사와 현장조사를 거쳐 보상등급을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해경 수사결과 조사기관인 A대학교 측은 일부 해녀에 대한 표본조사만을 실시했고, 설문조사 결과는 일체 반영하지 않는 등 부실한 현장조사를 했다. 심지어 어촌계장과 해녀 일부가 자체적으로 정한 생산등급을 그대로 반영하는 등 최종보고서를 엉터리로 작성했다.

울산해경은 어업피해조사서를 작성한 A대학교 교수를 업무상 배임 혐의를 적용해 조사 중이다.

이러한 허점을 노린 어촌계장, 어촌마을 전 이장, 전 한수원 보상담당자 등은 서로 공모해 조직적으로 가짜해녀들로부터 인당 1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돈을 받은 뒤 가짜 조업실적을 만들어 보상금 14억여원을 지급받았다.

특히 2016년 5월부터 4개월간 아르바이트생을 고용, A4용지 10박스 분량의 개인별 가짜 조업실적을 만들어 보상금에 눈먼 해녀들의 개인 노트나 메모지에 받아 적게 한 뒤 자신의 진짜 조업실적처럼 꾸몄다.

이러한 가짜 조업실적은 인근 어촌마을에서도 만들어졌고 해당 마을 어촌계장 또한 개입해 이 마을에도 7억여원의 보상금이 지급됐다. 2개 어촌마을에서 지급된 나잠어업 피해보상금은 확인된 금액만 21억여원에 달한다.

허위 수령한 보상금은 사업시행처가 판단해 전액 환수할 예정이다.

◇‘당연히 받아야 할 눈먼 돈’… 도덕 불감증 심각

마을 주민 130여명이 무더기로 피의자로 전락한 배경에는 피해보상금이 ‘당연히 받아야 할 눈먼 돈’이라는 인식에 따른 도덕 불감증에 있다.

실제로 가짜 해녀와 진짜 해녀 모두 조업 실적을 허위로 작성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경계심은 전혀 없었다.

주민들은 해경에 검거된 후 조사 과정에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 전체가 다 이렇게 했다”는 등 도덕 불감증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일부 주민들은 앞으로 지급될 보상금이 이번 사건의 여파로 지급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울산해경은 현재까지 수사결과를 토대로 어업피해 보상금이 지급되는 과정 전체의 문제점과 부당하게 지급된 어업피해 보상금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다. 성봉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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