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창가에서
카페 창가에서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1.1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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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영원한 기억으로 남았다. 세월이 참 빠르다. 국내외적으로 역사적 사건이 많았고 개인적으로도 의미 있는 날이 많았다. 

훌쩍 가버린 지난해 겨울은 얼마나 추웠던가.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추위가 덮친 것도 기억에 뚜렷하다. 그런 강추위에도 잘 견디었던지 새봄이 되니 언덕의 잔디는 아무렇지 않은 듯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났다. 살랑살랑 봄바람은 나의 뺨을 간질이어 주었다. 영원히 그럴진대 다시 한 번 자연의 신비함을 느낀다. 

한여름 무더위도 더욱 감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우렁찬 매미소리, 재잘거리는 참새소리, 이름 모를 희귀한 새의 청량한 울음소리는 무더위를 깨끗이 가라앉게 했다. 공원 안 실개천 물소리도 보탰다. 졸졸졸 시냇물소리로 착각할 정도였으니 마냥 꿈길을 걷는 것과 다를 게 있으랴. 더욱이 주위에 피어있는 파릇파릇한 이끼는 무릉도원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닌가. 

물감으로 수채한 듯 공원 가을단풍은 어떠했는가. 알록달록 마로니에 큰 잎사귀는 수채화를 연상케 했으니 일대의 감흥이었다. 그해 가을 나의 손자와 그곳에 다소곳이 앉았다. 손자와 나란히 접이의자에 앉아 잔디언덕을 바라보는 것. 내가 소망하던 모습을 똑같이 그려낸 것이다. 높고 푸른 창공을 쳐다보면서 행복하게 살아봄이 어떻겠냐는 무언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2019년 새해에 들어서자 동장군이 다시 기승을 부렸으니 어찌해야 하나. 제발 내가 사랑하는 이곳 잔디언덕은 얼지 않게 해주었으면…. 이것만이 아니다. 세상 모든 일도 얼지 말았으면 한다. 새해에 일어날 모든 인간사, 자연사들을 제발 용광로의 쇳물같이 녹여주길 바란다. 

트렌드 전문가 김난도는 말한다. 올해의 행복기준은 소확행과 더불어 필환경의 시대가 올 거라고. 워라벨에 이어 워크벨이 올 거라고. 그래서 소비자나 공급자가 다 같이 매너 있는 사람이 환대를 받을 거라고. 

‘인생은 지금 이 순간 한번뿐’이라고 주장하는 욜로 트렌드가 식어가고 ‘소확행’이 오고 있는 세상이다. 그것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감을 말한단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특유의 감성인 소확행으로 표현했다. 막 구운 따뜻한 빵을 손으로 뜯어먹는 것. 오후의 햇빛이 나뭇잎 그림자를 그리는 걸 바라보며 브람스의 실내악을 듣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있는 것…. 바로 이런 느낌이야말로 소확행이지 무었이겠냐는 것이다.

내가 애찬하는 잔디언덕은 집 앞 마두공원에 자리하여 행복하다. 외출할 때 반드시 거쳐 가는 오솔길 옆 잔디언덕. 사는 동안 애지중지 그리워할 테다. 

나의 소확행은 집 앞 마두공원을 통하는 오솔길을 걸으며 외출하는 것. 특히 잔디언덕 위를 걸으며 외출하는 일이다. 외출하는 장소는 일주일에 네 번이 책방이다. 도보로 걸으면 집에서 25분 만에 도착이다. 그러니 하루에 왕복 50분을 걷는 셈이어서 적당한 소확행임에 틀림없다.

붓다는 소확행을 지족(知足), 즉 지금 족한 바를 아는 마음이라 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 있어도 족한 바를 모른다면 항상 불만이 생긴다는 뜻이 담겨있다. 작은 것에서 감사할 줄 알고 삶을 관망할 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확행은 타인에게보다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봄이 바를 것이다. 

새해에는 자신의 행복을 타인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아름다운 황금돼지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9년 새해 카페 창가에서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본다. 

김원호 울산대 인문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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