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와 노장사상 그리고 자연인
도가와 노장사상 그리고 자연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1.02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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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산을 보아도 보는 것이 모자라고/ 때마다 물소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아/ 귀와 눈이 저절로 맑고 시원해/ 소리와 색깔 그 속에 고요함을 기르네.”

위의 글은 원감국사 충지(1226-1292)가 지었다. 한가함이 스스로 기뻐서 제목을 <한중자경(閑中自慶)>이라 붙인 칠언절구의 시이다. 수도자들은 예로부터 산과 물을 벗한다. 사는 곳이 산속이니 의당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산을 보니 눈이 맑아지고 물소리를 들으면서 귀가 시원해졌을 것이니, 수도하는 마음과 무심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시를 몇 해 전에 지인의 농막에서 만났다. 농막 주인이 원문과 함께 번역문을 코팅해놓은 걸 보면 썩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백운산 기슭의 탑골이 고향인 그는 어릴 적 뛰놀던 고향이 그리워서 태화강 발원지 입구에다가 농막을 지어놓고 농사는 짓는 둥 마는 둥이고 산자락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나도 종종 허름한 그 농막에 앉아 앞을 내려다보노라니 마음 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어느 늦은 봄날에 거기에서 더덕이며 잔대 몇 뿌리 캐서 산나물과 함께 된장에 찍어먹었을 때의 그 향내를 못내 잊을 수가 없다. 

이런 형태의 즐거움은 은퇴 이후에 더욱 갈구하게 되었다. 산을 찾아 자연 속에 머무르면 숲이 주는 기쁨이 배가되는 듯하다. 그래서 거처를 시골로 옮겼는지도 모른다. 중국 사상의 여명기였던 춘추전국시대 이래 유가(儒家)와 함께 동양 철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도가(道家) 또는 노장(老莊)사상은 무위자연 속에서 참된 진리의 길을 가라고 했다. 무욕과 은둔의 지혜를 가르친 이런 사상에 불교가 접목되었으니 절이 산으로 간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이런 도가의 현대판 전형이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방송 프로가 아닌가 한다.

언젠가부터 수요일이 기다려지게 되었다. 21시 50분부터 한 시간 동안 <나는 자연인이다>를 방송하는 날이어서 술자리에 앉았다가 도망 나와서 집으로 간 적도 있다. 방송 배경은 거의 대부분이 깊은 산중이고, 주인공은 거개가 홀로 사는 중년의 남자들이다. 그들은 외로움을 감수하면서 홀로 들어와서 살면서 무척 행복해 한다. 거처를 마련하고, 밭을 일구거나 짐승을 키우며 살아간다. 매일 산을 오르내리면서 약초, 버섯, 산열매, 산나물 등을 얻어온다. 대개 개울을 끼고 있는 걸 보면 그들에게는 맑은 물이 산 이상으로 중요하다. 

주인공들은 저마다 사연들이 구구각색이다. 건강을 잃어서 회복하러 온 사람, 가족을 잃어서 마음이 아픈 사람, 세상살이에 상처를 받고 들어온 사람 등 사연들이 다 다르다. 가끔은 별다른 사연 없이 산이 좋아서 들어온 이도 있긴 하다. 이처럼 다양한 사연을 갖고 있지만 마음을 비운 낙천적인 자세로 자연에 의탁하려는 가치관을 추구하려는 경향은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주거 공간은 자연인들 간에 편차가 크지만 각자 자기 방식대로 자활능력과 적응력이 뛰어나서 다들 행복지수가 매우 높다. 

지난 가을 어느 날에 <수줍은 여인 낙원을 찾다>라는 부제가 달린 자연인이 방영되었다. 그녀는 체격이 작고 연약했으나 손이 컸다. 가난하게 자라서 무일푼으로 결혼하여 사업에 성공했지만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서 이혼했다. 다시 운수업에 손을 댔으나 완전히 망했고, 식당을 운영하면서 요리를 익혔다. 이런 상처를 안고도 TV 속의 그녀는 티 없이 맑고 순박했다. 손수 지은 황토 집에서 자연물이나 버섯 등을 얻어가면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풍금을 치고, 그네도 타면서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만끽하는 그녀가 많이 부러웠다. 

이 프로그램의 주된 시청자들은 중년 남성들로 보인다. 친구들끼리 자연스럽게 <나는 자연인이다>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이 프로그램의 인기를 짐작케 하는 것이다. 주인공과 시청자의 연령층이 겹친다는 것은 극히 상식적이긴 하나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르긴 해도 대개의 사람들이 현실의 삶에서 지쳐서이고, 그래서 훌쩍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을지 모른다. 이 프로가 숲이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얼마나 크게 작용하는지를 가늠케 하는 장면들을 제공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대리만족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다. 

다시 새해가 시작되었다. 다수 사람들이 하늘을 원망하거나 타인을 탓하지 않는 세상이면 좋겠다. 갈등과 반목은 반복되겠지만 그래도 역사는 발전을 지향한다는 걸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무언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붕정만리 먼 길에 강인한 의지가 함께 하고, 힘든 상황에 직면하는 이들에게 극복하는 힘이 주어지면 더없이 좋겠다. 자연인까지는 아니어도 소요유(逍遙遊), 편안하게 노닐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더욱 큰 희망은 한반도 하늘에 새 빛이 감응하여 이 땅의 사람들이 하나 된 마음으로 공존의 길을 가는 것이다.

이정호 <수필가, 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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