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진료환경, 서둘러 마련해야
안전한 진료환경, 서둘러 마련해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9.01.02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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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적십자병원 장례식장 빈소를 찾은 의료인들은 물론이고 슬픈 소식을 뉴스로 전해들은 전국의 국민들이 비통함에 젖어 있다. 지난달 31일 외래진료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은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47)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때문이다.

임 교수의 죽음은 몇 가지 뒷얘기와 함께 작지 않은 사회적 파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고인은 숨지는 순간까지도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간호사들을 보호하려고 애썼다. 직업에 대한 그의 소명의식(召命意識)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고인(故人)은 생전에 우울증과 불안장애 분야의 논문을 100여 편이나 발표했고, 한국형 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일에도 선 굵은 기여를 했다.

2일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여동생 임 모씨가 밝힌 오빠 임세원 교수에 대한 이야기는 더없이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여동생 임씨는 오빠 임 교수가 ‘아무리 바빠도 2주에 한 번씩은 꼭 멀리서 부모님과 식사를 같이하는 효자’였고, ‘아이들을 너무도 사랑하는 아빠’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녀는 자신이 본 폐쇄회로TV 영상을 떠올리며 “가해자가 위협할 때 오빠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갔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유족으로서의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파장은 JTBC 드라마 ‘SKY 캐슬’로 번지기도 했다. 30대 가해자의 범행이 모방범죄 같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파장은 의료인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하는 진료환경에 세인들이 주목하게 만든 점이 아닐까 한다. 여동생 임씨는 “귀하고 소중한 임세원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의료진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비상벨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전국의 병원환경과 관련, 의료계와 정치권이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의료계는 가칭 ‘임세원법’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일 유가족의 뜻과 여론 등을 수렴해서 위급할 때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이 대피할 수 있는 뒷문을 만드는 등 안전장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학회는 이미 국회의원 몇 명이 법 제정 취지에 공감해 임세원법 제정에 속도를 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고 “의사의 안전과 권익이 보장되는 병원(진료)환경을 만들기 위해 더 분발하겠다”고 다짐했다.

허술한 병원환경을 오래도록 방치한 1차적 책임은 정치권과 의료계가 져야할 것으로 보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도 있지만, 지금까지 소를 여러 차례 잃고도 외양간 고치는 일에 뒷짐이나 지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모양새가 아니다. 일부 보도매체는 ‘임세원법’과 유사한 법률안 몇 건이 이미 국회에 올라가 있으나 해당 상임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한 채 낮잠만 자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국회는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더 이상 소를 잃는 일이 없도록 정치권과 의료계가 정신을 바짝 차렸으면 한다. 그것이 임세원 교수의 의로운 죽음에 대한 보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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